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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허니문 즐기는 대한체육회

입력
2017.03.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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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체육 대통령’으로 불리는 제40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입지는 흔들림 없이 탄탄대로다. 지난해 10월, 과거처럼 50여명에 불과한 각 종목 대의원들만의 표심이 아니라 1,500명에 가까운 사상 첫 ‘민선’ 통합 체육회장에 당선된 이 회장의 임기는 2021년 2월까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물론 2020 도쿄 하계올림픽까지 대한민국 스포츠의 전반을 조율하는 마에스트로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하지만 안팎의 폭발적인 기대를 안고 출범한 첫 통합회장의 행보로는 어울리지 않게 스텝이 크게 꼬인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통합회장 당선 반년이 다 돼가는데도 향후 통합체육회의 방향성과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스포츠로 행복한 대한민국’이란 슬로건만 나부낄 뿐, ‘어떻게’ 행복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빠져 있다. 구체적 계획 없이 단순한 선언적 의미의 비전제시로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물론 ‘KSOC 어젠다 2020’을 제시했지만 이는 체육회 재정자립과 은퇴선수 일자리 창출 등 자신의 선거공약에 대한 세부 실천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영혼 없는’ 인사로 인해 체육회 구성원들의 사기가 크게 위축돼 있다는 게 내부 분위기다.

실제 이 회장은 지난 1월 말 회장 취임 이후 첫 인사를 단행하면서 기존 고위 간부들에 대한 무더기 강등과 신임 본부장들의 직무대리 발령으로 체육계를 어리둥절케 했다. 구구한 변명이 뒤따랐지만 평생을 조직에 헌신한 직원들을 배려하는 리더십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와 정반대로 겉으론 외부 공모형식을 빌리기는 했으나 전격 발탁된 몇몇 고위인사는 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기도 한 이 회장과 사적으로 엮인 인물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선수단이 공항 입국장에서 대형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여자 피겨 최다빈, 여자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남자 크로스컨트리 김마그너스, 김상항 한국선수단장. 영종도=뉴스1
2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선수단이 공항 입국장에서 대형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여자 피겨 최다빈, 여자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남자 크로스컨트리 김마그너스, 김상항 한국선수단장. 영종도=뉴스1

다른 한편으로 이 회장은 놀라울 정도의 마당발과 인맥을 앞세워 구설을 자초했다. 회장 직속의 미래기획위원회 신설이 그것이다. 회장의 자문기구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시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화려한 면면의 정ㆍ관계 클럽을 연상케 할 정도다.

1기에 이어 2기 구성원 15명 전원이 고위 관료와 법조인 출신으로 채워진 미래기획위원회에는 우스꽝스럽게도 체육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한체육회가 이 회장 개인을 위한 사랑방 무대로 변질 됐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창립 100주년을 불과 3년 앞둔 대한체육회 사상, 마땅히 주인으로 대접 받아야 할 체육인을 외면하고, 법조인을 중심으로 한 외부인사들을 중용한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연 4,000억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권과 엘리트ㆍ동호인 생활체육인을 합해 600만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을 갖춘 이기흥호의 대한체육회는 역대 최장 허니문 기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이번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선수단은 금메달 16개로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등 총 50개의 메달을 수확해 한국 체육의 위상을 유감없이 떨쳤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일본 삿포로 시내 한국선수단의 숙소인 아파(APA) 호텔측이 객실과 로비 등에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은 극우 성향의 책자를 비치한 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아시안게임 조직위에 항의하고, 숙소를 변경하는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웬만한 정치력이 아니면 대응하기 힘든 조치였다. 그러나 눈길을 ‘집안’으로 돌리면 일부 경기단체장의 비리에 대해서는 수개월째 손을 놓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기흥호가 체육 개혁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연 예산 4,000억원 가운데 체육회장의 ‘입김’을 받을 수 있는 금액만 수백 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혹여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 아닐 수 없다. 비리 체육인에 대한 일벌백계 없이 이기흥호의 허니문이 오래 가지는 않을 듯 하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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