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계획 중인 직장인 김모(38)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시내 대단지 분양일정을 찾아본다. 대단지 분양이 예정된 곳 인근의 공인중개사무소에 들려 관련 소식을 묻는 게 어느덧 김씨의 일상이 됐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 빌라 주변엔 대형마트나 학교 등 편의ㆍ교육 시설이 부족하다. 김씨는 “올해와 내년엔 집값이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대단지는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실수요 측면에서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연내 청약을 목표로 대단지 신규 분양 단지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며 호황기엔 가격 상승폭이 크고 불황기에도 가격 하락폭이 적은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관리비가 상대적으로 적고, 비교적 손쉽게 매매가 가능할 뿐 아니라 조경시설 등도 잘 돼 있다는 게 대단지의 강점이다.
28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3~12월 분양이 예정된 1,000가구 이상 대단지는 전국에서 총 114곳 19만7,208가구다. 당장 3월 수도권에선 SK건설ㆍ현대산업개발이 서울 은평구 응암10구역을 재개발해 1,305가구를 짓는 ‘백련산 SK뷰 아이파크’를 분양한다. 지하 3층~지상 25층, 11개 동으로 건설되며 전체 가구 중 460가구가 일반에 분양된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과 새절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다. 제일건설도 이달 중 평택시 고덕국제신도시 A17블록에 전용 면적 84∼99㎡ 1,022가구의 대단지 아파트인 ‘고덕국제신도시 제일풍경채 센트럴’을 분양할 계획이다.
또 ▦인천 송도센토피아더샵(3,100가구ㆍ5월 분양)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 재건축(4,066가구ㆍ6월 분양) ▦과천 지식정보타운(1,922가구ㆍ11월 분양) ▦김포 고촌 향산리힐스테이트(3,506가구ㆍ12월 분양) 등도 분양을 앞두고 있다.
최근 가파른 가격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부산에도 대규모 단지가 들어선다. 부산 북구 e편한세상만덕5구역(2,120가구ㆍ3월 분양)과 부산 동래구 온천동 온천2구역을 재개발하는 온천2구역 래미안(3,853가구ㆍ11월 분양)이 눈길을 끄는 단지다.
1,000가구 이상 대단지는 해당지역 랜드마크 효과는 물론 교통ㆍ쇼핑ㆍ문화 등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이 집중되는 곳이어서 인기가 높다. 운영비와 공용공간 청소비 등을 나눠내다 보니 가구 수가 적은 소규모 아파트 단지보다 관리비 절감 효과도 크다. 1,000가구 이상 아파트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발 부지의 5% 또는 가구당 3㎡ 이상을 공원ㆍ녹지로 조성해야 하는 만큼 주거 환경도 쾌적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의 1순위 청약경쟁률은 평균 22.03대 1로, 500가구 이하 소규모 단지(17.21대 1)보다 훨씬 높았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부동산 시장 전망이 어둡지만 실수요자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올해도 대단지의 인기는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많으니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500가구 이상인 아파트가 6.6%로 가장 높았고, 1,000~1,500 가구도 4.8%를 기록했다. 반면 1,000가구에 못 미치는 소규모 단지의 가격상승률은 3%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단지 아파트라고 무작정 계약에 나서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주택경기가 얼어붙는 상황에서 미분양이 날 경우 수천 가구에 달하는 대단지는 물량 해소가 상대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이다. 입주할 땐 물량이 쏟아져 전세값은 물론 매매가도 크게 출렁일 수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입지가 좋지 않은 곳에 들어선 대단지를 선뜻 계약했다간 준공 후 미분양에 시달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단지는 면적이 넓어 동(棟)과 주 출입처ㆍ버스정류장ㆍ지하철역과의 거리에 따라 선호도가 갈리기 때문에 시세 차익을 기대한다면 분양 받고자 하는 곳이 단지 내 어느 위치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위원도 “최근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쏟아내며 중도금 대출 금리가 지난해 2%대에서 최근엔 5%선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아무리 대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금여력부터 점검한 뒤 청약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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