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대안 ‘속속’…부분난청 해결하는 EAS수술까지
‘사오정’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한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런 농담이 난청 환자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생채기가 된다.
대한이과학회에 따르면 60세 이상에서 절반이 넘는 52%가 난청이다. 이 같은 난청 치료엔 보청기가 가장 많이 쓰인다. 환자의 70~80%정도(경ㆍ중도 난청)는 보청기로 난청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30%정도는 보청기로도 해결할 수 없다. 고심도(高深度) 감각신경성 난청, 고주파 급강하형 난청(부분 난청) 등이다.
골전도(骨傳導) 임플란트, 인공 와우(蝸牛ㆍ달팽이관) 이식술, EAS(Electric Acoustic Stimulationㆍ전기 음향 자극)수술 등 해결책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EAS수술은 보청기와 인공 와우가 결합한 형태로, 치료법이 없었던 부분 난청 치료가 가능해졌다. 부분 난청 환자에게 그야말로 복음이다. 난청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이명 완화까지…발전하는 보청기
보청기는 인류와 거의 역사를 같이 했다. 동물 뿔과 조개, 나무로 만든 보청기에서 16세기에 나팔 모양의 보청기가 나왔다. 1899년엔 건전지식 보청기가 이어 진공관 보청기(1920년대), 귀걸이형 보청기(1952년), 반도체 보청기(1977년), 디지털 보청기(1982년) 등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말소리 변별력(어음 변별력)이 좋지 않으면 일반 보청기를 착용해 소리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고주파수를 압축해 중ㆍ저주파로 바꾸는 주파수 압축 보청기도 나왔다.
또한 보청기는 귀를 막기 때문에 저주파 영역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은 귀가 울리고 침을 삼키는 소리, 자신의 목소리가 다 울리게 들릴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귀를 막지 않는 오픈형 보청기도 개발됐다.
거의 보이지 않는 초소형 고막형 보청기, 한쪽 난청만 있는 사람을 위한 크로스보청기, 이명(耳鳴)을 완화하거나, 시끄러운 곳에서도 잘 듣게 하는 보청기까지 나왔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앱으로 보청기 프로그램을 환자 스스로가 조절하게 됐다.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전 미국 대통령들도 착용했을 정도로 보청기는 난청 환자를 위한 ‘필수품’이다. 하지만 한계는 여전하다.
소리전달통로 문제면 ‘골전도 임플란트’
내이(內耳)쪽 달팽이관은 괜찮은데 소리전달통로인 고막이나 이소골(中耳)이 망가져 소리의 물리적 에너지가 달팽이관으로 전달되지 못해 생기는 난청을 전음성(傳音性) 난청이라고 한다. 전체 난청의 30%정도가 이 난청이다.
전음성 난청 가운데 일부는 보청기로 해결하기 어렵다. 만성 중이염(귀에서 고름이 계속 나오는 증상), 삼출성 중이염(귀에 물에 찼다고 하는 증상), 이소골 연결구조의 파괴, 외상성 고막 천공, 선천성 이소골 기형, 이경화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음성 난청은 중이염수술, 이소골수술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런 수술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 골전도 임플란트(골도 이식형 보청기) 수술이 해결책일 수 있다. 소리를 듣는 방식은 두 가지다. 공기로 듣는 공기전도식과 두개골(頭蓋骨)로 듣는 골전도식이다. 골전도 임플란트는 귓속에 진동자(소리 진동 전달 기기)를 심어(임플란트) 외부장치에서 들어온 소리 진동을 소리전달통로(고막, 이소골)를 통하지 않고 달팽이관으로 직접 전달해 듣게 하게 방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부 장치(나사)를 귀 뒤쪽 피부에 직접 박는 방식이어서 염증 등 부작용이 있었다. 최근 귀 뒤쪽 피부 밑에 티타늄을 삽입해 동전만한 자석만 부착하는 방식으로 개선됐다.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 인공와우이식을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은 내이(內耳)의 달팽이관의 소리 감지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소리 자극을 뇌로 전달하는 청신경이나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발생한다. 심각한 경우엔 보청기가 별 도움 되지 않는다. 전체 난청 환자의 5% 정도가 해당된다.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인 사람이 보청기를 쓰면 주위 잡음만 크게 들리고 소리 높낮이 구별이 힘들다. 이럴 때에는 ‘인공 와우 이식술’을 고려해야 한다.
인공 와우는 달팽이관청각세포를 대신해 청신경으로 소리를 전달해주는 청각의료기기다. 보청기가 소리를 증폭해 귀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반해 인공 와우는 청신경을 직접 자극해 뇌로 소리를 전달한다.
인공 와우 이식술은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일 때 시행하는 유일한 수술법이다. 1988년 이 이식술이 국내 도입되기 전에는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은 불치병이었다.
이 이식술은 달팽이관의 청각세포 기능이 완전히 없어져도 청신경 기능이 10% 이상만 남았어도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청각 장애를 획기적으로 바꾼 수술이다.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인 성인뿐만 아니라 신생아도 수술이 가능하다. 신생아가 난청선별검사와 정밀검사 결과, 고심도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진단되면 이식술을 고려할 수 있다. 출산 3개월 전~출산 후 1개월 이내 보건소 건강관리과에 문의하면 난청선별검사를 받는 데 도움 받을 수 있다.
부분 난청, EAS수술이 해결사
치료가 가장 어려운 난청이 부분 난청이다. 조용한 곳에서 대화하는 데는 별 문제 없다가 시끄러운 곳에서는 유독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난청이다. 낮은 소리는 잘 듣지만 높은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다. 이 때는 보청기가 도움 되지 않는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난청 사각지대’로 불린다.
그렇다고 인공 와우 수술을 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저음 청력마저 확 떨어진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보청기와 인공 와우를 결합한 EAS수술(하이브리드 임플란트, 하이브리드 인공 와우 수술)이다. 저주파 음역은 보청기로 듣고, 1,000Hz 이상 고주파 음역은 인공 와우로 거의 정상 수준으로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의대 폰 일베르크와 J. 키에프가 처음 시행했다.
수술 성패는 남아 있는 청력을 얼마나 보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기존 인공 와우 수술처럼 전극을 넣기 위해 달팽이관에 드릴로 구멍을 뚫으면 전극 자체가 짧아도 달팽이관의 정상세포를 손상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EAS수술에서는 구멍을 뚫지 않고 달팽이관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정원창)를 통해 전극을 넣는다. 사람마다 귀 모양이 미세하게 달라 정원창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아 의사 술기(術技)가 매우 중요하다.
국내 최초로 EAS수술을 성공하고 국내 최다 수술을 시행한 전영명 소리귀클리닉 원장(전 아주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은 “EAS수술 후 환자의 잔존 청력을 비교한 결과 5~15데시벨(dB)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수술 후 청력이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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