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유린, 주권훼손 박 대통령 탄핵은 당연
소수의견 반대세력에 정당성 시빗거리 제공
헌재, 치열한 토론 거쳐 만장일치 결정해야
1987년 개헌 때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설치된 헌법재판소를 지금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린 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의 적극적 정치 스타일이 첨예한 갈등을 불렀고 그 심판자 역할을 헌재가 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재신임 국민투표 헌법소원을 시작으로 이라크 파병, 탄핵심판, 신행정수도, 대통령선거중립 의무, 종부세 위헌소송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결과를 놓고 보면 노무현은 얻은 게 없지만 헌재는 노무현 덕을 톡톡히 봤다.
노무현 탄핵심판 전례가 없었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여기까지 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온갖 행패와 생트집에도 헌재가 분을 삭여가며 차분하게 대처한 것도 과거 탄핵재판에서의 노하우가 쌓였기에 가능했다. 27일 최종변론에서도 박 대통령 측은 마지막까지 ‘진상 짓’을 멈추지 않았다. ‘8인 재판부’가 내리는 결정은 위헌이라며 변론 종결을 반대했다. 2011년 8인 재판부 심리가 합헌이라는 헌재 판례가 있고 노무현 탄핵재판 때보다 두 배 이상의 변론기회를 줬는데도 막무가내다. 어쨌든 지난 석 달간 헌재는 신속성과 공정성이라는 저울을 들고 균형추를 잡아 왔다.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의 파면 여부다.
지난 30년 동안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을 다뤄 온 헌재는 헌법수호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 결정 모두 헌법 아래 있다는 소신에 차 있다. 헌법재판관들이 임명권자를 의식하지 않고 양심과 가치에 따라 결정을 내리리라는 믿음을 심어 준 이유다. 일전에 만난 헌법재판관 출신의 변호사는 “평의에 들어가보면 재판관 모두 개인의 헌법적 소신과 가치관에 따라 의견을 내놓는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의 가치와 원리를 지킨다는 원칙에 따른다면 박 대통령 탄핵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부에서 8명의 재판관 중 박 대통령과 여당이 지명한 사람이 5명이라는 데 우려를 나타내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박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최순실 일당에 넘김으로써 헌법이 규정한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위반했다. 출석을 거부한 채 헌재에 낸 최후 진술에서는 개전의 정마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헌재 결정을 무산시키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스팔트 세력’의 행태다. 이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내전’이니 ‘계엄령’이니 하는 막말을 쏟아내며 ‘박근혜 사수’를 외치고 있다. 국가적 혼란과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 갈등 조정자인 헌재로서는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할 방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은 만장일치 판결이다. 사회 변화와 흐름을 선도하는 차원에서 판례변경 가능성을 열어 두는 소수의견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갈등을 봉합하고 불필요한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원일치 결정이 최선일 수 있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소수 의견이 나오면 일부 세력이 이를 ‘불복의 신주단지’로 삼고 반발을 이어갈 개연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흑인차별의 벽을 깬 1954년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판결이다. 당시 대법관 9명의 의견이 갈리자 대법원은 국론분열을 우려해 선고를 미루고 3년에 걸쳐 다수의견에 동조하지 않던 법관들을 설득해 만장일치 결정을 이끌어 냈다.
박 대통령 탄핵판결의 경우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2주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합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무현 탄핵 평의 때 재판관들끼리 고성이 오가고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갈 정도로 열띤 토론이 벌어진 바 있다. 이번 평의에선 설혹 소수의견이 있다 해도 활발한 토론을 통해 헌법가치 수호와 국민통합을 위한 일치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주권자인 국민 다수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234명의 찬성을 받았고, 지금도 국민 75%가 탄핵을 원하고 있다. 이번 탄핵 결정에 헌재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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