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가 미국의 북 참석자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로 무산됐다. 미국은 비자 발급 거부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최근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독살 사건이 배경일 것으로 짐작된다.
북미 간 반관반민 대화는 정부 간 직접 접촉이 단절된 상황에서 비핵화에 대한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고 대화 복귀 가능성을 탐색하는 유일한 양자접촉 창구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2008년 말 이후 6자회담이 중단되고, 지난해 북한이 뉴욕채널 단절을 공식 확인하는 등 북미 간 공식 접촉이 꽉 막힌 상태에서도 반관반민 대화는 말레이시아 스위스 독일 몽골 등에서 수 년간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특히 이번 대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 출범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북미관계의 새로운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2011년 7월 이후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양측이 미국에서 만난다는 것도 그랬다.
반관반민 접촉에 대해 그 동안 “민간차원의 접촉일 뿐”이라며 관여하지 않겠다던 미국 정부가 불과 며칠을 앞두고 비자발급을 거부한 것은 그만큼 새 정부의 대북 인식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매우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며 김정은과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너무 늦었다”며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김정남 독살에 국제사회가 생산과 보유를 엄격히 금지한 대량살상용 화학무기 VX가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경악과 분노는 확산일로다. 미 국무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극소량만으로 목숨을 빼앗는 맹독성 화학물질을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대중이 이용하는 국제공항에서 암살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다. 상대국의 안전과 주권을 농락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화학무기 사용을 공개적으로 위협한 것과 다름없다. 미 국방부가 “실질적 위협”이라고 밝히고, 북한을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다음달부터는 미국의 전략자산이 대거 투입되는 한미 군사훈련이 열리는 등 당분간 한반도 정세는 예측하기 힘든 대결 국면의 조성이 불가피하다. 당장 대화 분위기 조성은 힘들더라도 무력 대치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위기관리 능력부터 다듬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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