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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우리시대 영웅이 있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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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우리시대 영웅이 있어야 할텐데요”

입력
2017.02.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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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한 배우 안재욱은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의사처럼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왕태석 기자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연기한 배우 안재욱은 "안중근 의사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의사처럼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왕태석 기자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는 무죄, 이토를 쏴 죽인 나는 사형, 대체 일본법은 왜 이리 엉망이란 말입니까!”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죄로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재판을 받던 안중근 의사는 “나는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라며 이토를 죽인 명분을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열다섯 가지 명분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뮤지컬 ‘영웅’의 넘버 ‘누가 죄인인가’에서 관객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다. 안방극장 배우로 활약하며 다져 온 연기력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 안재욱(46)은 가사가 많고 속도도 빠른 이 곡에서 빛을 발한다.

뮤지컬 '영웅'에서 안재욱(가운데)이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노래 부르고 있다. 로네뜨 제공
뮤지컬 '영웅'에서 안재욱(가운데)이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노래 부르고 있다. 로네뜨 제공

2009년 초연 후 어느덧 8번째 무대에 오른 뮤지컬 ‘영웅’은 이번 시즌에서 초연부터 함께한 배우 정성화, 7년 만에 돌아온 양준모 외에 안재욱과 이지훈을 안중근 역에 깜짝 캐스팅했다. 이전 ‘안중근’들과는 다른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안재욱을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단단히 다진 배우들이 있는 상황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만도 했다. 하지만 안재욱은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작품이더라도 배우마다 섬세한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며 “정성화 배우가 쌓아온 작품 내공에 제가 가세를 하면서 새로운 볼거리와 활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고 밝혔다. 성악발성 등 노래보다는 전체적인 극 흐름에 맞춰 안 의사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안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까지 내면의 갈등과 고민, 결단력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대 위에서 멋져 보이는 연기보다는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그런 모습을 전달하는 게 포인트였죠.” 그가 꼽은 최고의 넘버 역시 거사를 치르기 직전 다가 올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마지막 용단을 내리는 과정을 그린 ‘십자가 앞에서’다.

26일로 이번 시즌 막을 내린 ‘영웅’은 지난해부터 불거진 국정농단과 맞물려 관객들로부터 더 큰 호응을 받았다. 안재욱이 연기한 무대의 유료관객점유율은 86%에 달했고 공연 4번 중 1번은 매진됐다. ‘터줏대감’이라 할 정성화에는 못 미치는 성과지만 기대 이상의 몫을 해냈다. 하지만 안재욱은 작품 흥행 중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심경을 밝혔다. “관객들이 ‘공연 후 극장 밖으로 나가면, 촛불집회를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면서 먹먹해진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에게도 진정한 영웅이 있어야 할 텐데 이런 생각에 작품 흥행 중에도 마음 한 편이 무겁고 착잡하죠.”

안재욱은 7월부터는 뮤지컬 ‘아리랑’ 재공연 무대에 오른다. 조정래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아리랑’에서도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애쓰는 양반 송수익을 연기했다. 연달아 독립운동가를 맡게 된 소감이 궁금했다. 그는 “배우로서 무대 올라갈 때 보통 마음가짐은 ‘연기를 잘해야겠다’인데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제가 못하면 애국심 없는 사람처럼 비칠까 봐 더 긴장을 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대사 한 마디, 노래 한 소절을 할 때도 더 열과 성을 다해 몇 배의 몰입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에서도 현대극을 주로 하던 그였지만 이제는 사극에도 도전해보고 싶단다. “보여줄 거리가 많은 인물로 막연하게 연산군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안재욱은 뮤지컬과 드라마는 물론 이달 초 일본에서 디너쇼를 가질 만큼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한다. 그는 “어느 한 분야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으면 다른 하나를 쉽게 접었을 텐데 부족하다고 느끼다 보니 다 하게 된다”며 웃었다. 최근엔 연극 연출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쉽사리 도전은 못하고 있다. “좋은 연극도 많이 눈여겨보며 준비를 한 뒤에 도전해야 하는데, 아직 갖고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니까 연기를 더 잘하자는 생각이죠.”

안재욱은 2013년 미국 여행을 떠났다가 지주막하출혈로 긴급 수술을 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하루를 즐긴다”며 “그게 건강하다는 의미 아니겠냐”고 말했다. 바쁜 스케줄에 힘이 되는 건 역시 가족이다. 뮤지컬배우 최현주와 2015년 결혼한 안재욱은 최근 딸 수현의 돌잔치를 치렀다. 그는 “노래를 전공한 아내가 알려주는 ‘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는 팁’ 등 도움을 많이 받는다”며 “무엇보다 응원의 말 한마디가 굉장한 힘이 된다”고 했다. 육아는 스타배우에게도 예외 없는 노동. “아기가 생긴 뒤 쉬는 날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먼저 아이 낳은 배우들이 분장실에서 피곤해하면 이해를 못했었는데 요즘은 제가 눈이 뻘게져서 있어요.”

안재욱은 가장 큰 꿈으로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속 연기하는 것”을 들었다. 2000년대 들어 뮤지컬 무대에서 본격 활약해 온 안재욱의 경쟁력은 역시나 연기력.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성량이나 가창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지만 연기력으로 부족한 점을 채운다”며 “그의 오랜 팬들이 공연장을 찾는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음악을 전공으로 한 배우들에 비해 노래는 아쉽지만 뮤지컬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며 “특히 ‘아리랑’과 ‘영웅’처럼 자신이 의미를 크게 두는 캐릭터에서 더 빛을 발한다”고 평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맡은 안재욱 공연 장면. 로네뜨 제공
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을 맡은 안재욱 공연 장면. 로네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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