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미사일 발사ㆍ암살 맞물려
北대표 비자 발급 거부… 대화 불발
유엔인권이사회, 김정남 암살 주요 의제로
“ICC에 기소”… 北 압박 거세질 듯
미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사건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려는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고 있다. 유엔이 사용을 금지한 독극물을 이용해 김정남을 암살한데 대한 국제사회의 북한 비판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26일 교도(共同) 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은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 정부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2일 중거리 탄도 미사일 ‘북극성-2호’ 발사와 13일 김정남 피살 사건에 따른 대북 여론 악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 정부는 김정남 피살사건에 유엔 화학무기 협약(CWC)에 따라 사용이 금지된 맹독성 신경가스 VX가 쓰인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에 대처하지 않을 경우 자칫 핵·미사일 위협에 화학무기 위협이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일찌감치 테러지원국 지정을 못박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앞서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북한 VX가 탄두에 실리면 대량살상무기로 만들어진다”라며 우려를 언급했다.
미 의회에서는 최근 공화당 소속 테드 포(텍사스) 하원의원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H.R 479)을 발의했고, 코리 가드너(콜로라도ㆍ공화당)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 등 공화당 상원의원 6명도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북한에 대한 추가 금융제재와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테러지원국은 국제 테러 행위에 직접 가담했거나 지원 또는 방조한 혐의가 있는 국가로 무기 수출 금지, 무역 제재 등 강력한 제재가 취해진다.
하지만 실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지는 미지수다. 테러와 직접 또는 간접적인 연관관계를 밝히기 쉽지 않고 북미 관계 완전 단절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2014년 소니픽처스 해킹 당시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검토했으나 보류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관계자는 NHK에 “트럼프 정권이 권한 인수 단계에 있는 동안에는 재지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언론은 내달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국과 북한의 반민반관(半民半官) 대화인 ‘1.5트랙 대화’가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WP) 에 따르면 미국 전직 관리와 북한 측 대표단 간 1.5트랙 대화는 내달 1~2일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국무부가 북한 측 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북미국장 비자 발급을 거부해 무산됐다. 2011년 7월 이후 양측이 5년 여 만에 미국에서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었으나 김정남 사건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WP는 “김정남 사건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확산되는 상황이라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대화를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하는 제34차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서는 김정남 피살 사건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내달 13일에는 오헤나 킨타나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놓고 같은 곳에서 일반 토론이 진행된다. 북한 인권 전문가 그룹이 이사회 개회에 앞서 킨타나 특별보고관 부속 보고서 형태로 제출한 문건에는 북한을 반인도적 범죄국가로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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