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시라요. 방으로 모시갔습니다.”
지난 21일 저녁에 찾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 북한식당 ‘고려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북한인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발표 때문인지 입장부터가 쉽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공연을 못 보지 않느냐’는 말에 “지금 홀이 꽉 찼습네다”는 답이 왔고, 홀을 가리키며 ‘저기 빈 자리는 무엇이냐’고 따지자 다른 손님이 예약한 자리라고 했다. 한국 손님을 배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는 수 없이 안내를 받아 들어선 방. 썩 넓진 않았지만, 일제 TV와 노래방기기가 설치돼 있었다. 노래방 매뉴얼은 8할이 중국 노래였고 나머지는 영어와 러시아어로 된 것들이었다. 한글로 된 노래는 한 곡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복차림의 여종업원은 이것 저것 묻는 말에 묘한 미소만 띠며 답을 피해갔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 길, 영업 종료까지는 두 시간이나 남았지만 입구에서는 종업원들이 또 다른 한국 일행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장사 다 끝났다”는 말만 반복했고, 씩씩거리던 손님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돌아섰다. “다시는 오나 봐라!” 김정남 암살 사건 여파로 악화한 측면도 있겠지만, 교류가 없다시피 한 말레이시아 내 남북관계의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시계를 7년 전으로 되돌리면 분위기는 완전이 달랐다. 교민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고려관의 전신은 ‘평양랭면.’ 주말레이 한국 대사관이 있는 암팡 지역에 단층으로 된 대규모 식당이었다. 약 500석 규모에 대형 주차장까지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한 교민은 “천안함 폭침 사건 전만 해도 한국사람들 사랑방으로 봐도 될 만큼 교민들로 북적였다”고 기억했다. 특히 여종업원들이 ‘반갑습니다’ 등 노래 공연을 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같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식당으로 알려진 ‘고려원’의 안주인도 “당시엔 밥장사 하는 우리도 북한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며 “북한 사람들도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그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북한 고위직들도 와서 식사하고, 내실에서 회의까지 하고 갔다”고 말했다.
오고 가며 함께 식사하고 노래도 부르던 말레이 내 남북 관계가 급 반전된 건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교민은 물론 주재원, 관광객들까지 서로 발길을 끊었다. ‘평양랭면’은 기울기 시작했고, 2013년쯤 문을 닫았다. 이후 지금의 자리에 고려원으로 새로 문을 열었지만 예전 같지 못하다.
10년째 이곳에서 여행 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한 교민은 “평양랭면이 망한 뒤 이곳에 북한식당은 아예 없어진 줄 알았다”며 ‘고려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등진 쿠알라룸푸르의 남북은 김정남 피살 후 더욱 반목하는 모양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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