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정남 암살 독극물은 ‘금지 화학무기’ VX
알림

김정남 암살 독극물은 ‘금지 화학무기’ VX

입력
2017.02.24 17:45
0 0
칼리드 아부 바카르(가운데)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24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귀빈실 입구에서 김정남 부검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시스
칼리드 아부 바카르(가운데)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24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귀빈실 입구에서 김정남 부검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죽음에 이르게 한 독극물의 정체가 화학무기로 사용되는 맹독성 신경가스인 ‘VX’로 밝혀졌다. 독살로 드러난 김정남의 사망 원인이 북한 소행설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암살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는 점에서 수사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말레이시아 경찰에 따르면 말레이 보건부 화학국이 김정남 부검 샘플에서 검출한 성분은 ‘QL’이라 불리는 ‘에틸 S-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트’, 즉 신경작용제 VX이다. 말레이 보건부 화학국은 15일부터 시신 부검을 거쳐 시료를 분석해 왔으며 사망자의 안구점막 및 얼굴에서 미량의 VX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 경찰청장은 “화학무기인 VX의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며 사인 규명이 완료됐음을 확인했다.

VX 검출은 13일 김정남이 피살된 이후 사건 수사와 관련한 최초의 객관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범행을 실행한 도안 티 흐엉(29), 시티 아이샤(25) 두 외국인 여성과 경찰이 배후로 점찍은 북한 국적자 8명 등 용의자들의 윤곽은 드러났으나 사건 실체 규명에 필요한 물증은 밝혀진 것이 없어 수사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인이 독살로 결론 나면서 “북한여권 소지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기존 북측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궁금증은 끔찍한 화학 테러를 어떻게 손쉽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에 모아진다. 말레이 경찰은 22일 “두 여성 용의자가 맨 손(bare hands)에 독극물을 바른 뒤 직접 피살자(김정남) 얼굴에 문질렀다”고 범행 수법을 공개했다. 0.01g의 극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VX의 독성을 감안하면 손으로 만지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 전문가들은 범행 가담자가 2명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최근 공개된 범행 당시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 아이샤와 흐엉이 짧은 시차를 두고 김정남에게 접근해 그의 얼굴을 만지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물질을 손에 발라두고 번갈아 김정남 얼굴에 문질렀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말레이메일온라인에 따르면 VX는 주성분인 QL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 황화합물(NE)을 섞은 혼합물 ‘VX2’ 형태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리 분리한 각 물질을 두 사람이 차례대로 발랐을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피부 내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 강한 독성이 발현됐을 수 있다. 김정남이 피습 후 최소 30분간 의식을 유지한 점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용의자들은 치밀한 준비 덕분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칼리드 청장은 “독살을 실행한 여성 용의자 중 한 명이 자주 구토를 한다.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VX는 윤활유처럼 물과 섞이지 않고 강한 점성을 띠는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히 증발하려면 수일에서 수주가 걸려 VX에 노출된 김정남의 모든 동선이 오염됐을 우려가 있다. 말레이 당국은 범행 장소인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와 인근 지역을 정밀 조사할 방침이다.

VX로 밝혀진 김정남의 사인이 사건 해결에 의외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VX 사용과 북한간 연결고리가 포착될 경우 아직 수수방관하는 중국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VX를 테러에 활용했다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이상 중국도 석탄 수입을 중단하는 조치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