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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있어도 눈치보여 못 써요” 갈길 먼 마트 근로자 앉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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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있어도 눈치보여 못 써요” 갈길 먼 마트 근로자 앉을 권리

입력
2017.02.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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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는 서서’ 사회적 인식에

의자 비치 규칙은 유명무실

10명 중 7명 근골격계 질환

“외국선 앉아 일하는 게 일반적

제도보완 함께 인식 개선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1일 오후 기념품을 사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를 찾은 독일인 벤(32)씨는 계산을 하는 도중 고개를 갸웃했다. 계산대 앞 직원들이 쉴새 없이 바코드를 찍고 있는 가운데, 한 켠에 치워진 간이 의자를 가리키며 “왜 굳이 저렇게 서서 일을 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실제 마트 내 계산 직원들은 누구도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독일에서는 손님이 있든 없든 앉아서 일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의아해했다.

대형마트 근로자들이 앓고 있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전국 대형마트 근로자 1,2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877명(70.8%)이 요통이나 어깨 결림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발바닥 통증인 족저근막염을 호소하는 이들도 312명(34.4%)에 달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한시도 앉을 틈도 없이 계산대에 서서 일하는 직원들은 발바닥이나 허리 등의 고질적인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20일과 21일 양일간 본보가 서울 시내 대형마트 5곳을 돌아본 결과, 마트의 계산 직원들 가운데 자리에 앉아 일하는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시식코너 등이 위치한 내부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번 근무에 들어가면 3시간 기본적으로 서 있지만 의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50)씨는 “어차피 의자는 앉지도 못하고 거슬리기만 할 뿐”이라며 “여기서는 옆에다 치워두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잠깐 앉기라도 하면 “건방지다”는 손님 항의가 빗발치는데 누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냐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마트도 이를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마트 근무 3년차인 이모(48)씨는 “교육 때마다 ‘고객들이 (앉아서 근무하는 직원을) 싫어하는 것 아시죠’라고 하거나, 아예 교육 시간에 ‘앉으면 안 된다’고 금지령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는 “매장을 돌아다니며 앉아있는 직원이 없는지 감시하며, 주의를 주기도 한다”고 했다. 고객불만이 접수되면 업무평가에서 감점을 받고 상여금이나 성과급 삭감, 기피부서 발령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들이 힘들어하는 건 ‘서비스업 종사자라면 서서 응대하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이다. 지난 2008년 노동ㆍ여성 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주장하며 전국적으로 의자 비치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 그 결과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를 위해 사업주가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80조 의자의 비치)이 새롭게 주목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되도록 이들의 ‘앉을 권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달라진 거라곤, ‘사용할 수 없는’ 의자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뿐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 관계자는 “단순히 앉고 서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얼마나 마트 직원들의 근로 환경이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마트의 한 직원은 “3~4시간 서서 일한 뒤에는 마음 편히 앉아 물 한 잔 마실 휴게실조차 마땅치 않다”며 “무엇보다 제도보완과 함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마트 직원은 “요즘 인력을 줄이다 보니 오전에는 계산대를 두세 개 정도만 운영해 중간에 4시간 가까이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방광염을 앓는 동료들이 다수”라며 “잠깐 앉아 쉬는 직원들을 보더라도 건방지다고 할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라고 이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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