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北측 기자회견” 소식에
대사관 앞엔 취재진 북새통
갑자기 직원 한 명 나와 목청
“오늘은 기자회견 없다, 가라”
“말레이 정부, 북한대사 추방 후
평양 대사관 폐쇄 검토” 보도도
23일 오전 9시(현지시간)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의 부킷 다만사라 초입.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들로 길이 꽉 막혔다. 김정남 피살 후 북 측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창구여서 종종 연출되는 풍경이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오전 9시30분에 북한 대사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불과 회견 예정 시각 1시간 전인 8시30분께 전파됐기 때문. 취재진 100여명이 황급히 모여들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10시가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다. 대신 중간에 나타난 대사관 직원은 “오늘은 기자회견이 없다”고 전했다. 비교적 침착해 보이던 그의 표정은 “범행에 연루된 현광성(2등 서기관)이 여기 안에 있느냐” 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그러졌다. 그는 “외교관에 대한 것은 다 거짓말이고 중상모략”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더니 “(경찰이) 우리에게 통보해준 것이 없다”고 소리쳤다. 전날 북한 대사관 직원이 사건에 연루돼 있고, 이들이 경찰 조사에 응하도록 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말레이시아 경찰 발표를 전면 반박한 것이다. 그는 1시간 뒤 다시 나와 배달된 신문을 가지고 들어 가면서 취재진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번 사건 용의자들이 대사관 안에 은신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날 북한 대사관 주변으로는 하루 종일 긴장이 감돌았다. 오후 차량 몇 대가 드나들기는 했지만 취재진 질문에는 일절 응답하지는 않았다.
북한 대사관 측이 일관되게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결과를 부정하고 있는 가운데, 말레이시아 내 대북 비난 여론도 극에 달했다. 유력 정당까지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말레이시아 연립정부를 주도하는 통일말레이 국민조직(UMNO) 청년위원회와 말레이시아인도회의(MIC) 등 항의방문단 30여명은 이날 오후 북한 대사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을 성토했다. 방문단을 이끈 카이룰 아즈완 하룬 상원의원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과 맺은 비자면제 협정을 파기하고 북한과의 외교관계도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방문단은 가수 싸이, 김정은 그림과 함께 ‘싸이는 예스, 스파이는 노(Psy Yes, Spy No)’, ‘말레이시아를 존중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수사와 무관한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북한 비난에 가세했다. 이날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세리 나스리 아지즈 장관은 “북한이 국제법을 아예 지키지 않는 ‘깡패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국 국민에게 북한 관광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강철 북한대사를 ‘외교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선언해 추방하고 평양주재 대사관을 폐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