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경찰관 마카오 파견” 보도
김한솔 등 만나러 갔을 가능성
말레이 경찰·中 당국 일단 부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중인 말레이시아 당국이 북한 소행설을 입증할 ‘핵심 퍼즐’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로 김정남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유전자정보(DNA) 확보다. 피살자가 김정남으로 확인돼야 배후 규명은 물론 책임 소재를 특정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중국보(中國報) 등 현지 매체들은 23일 말레이 경찰본부가 이날 오전 중 경찰관 3명을 이틀간 일정으로 마카오로 파견, 김정남 부인 이혜경과 아들 김한솔(22) 등 가족 DNA를 채취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김정남 가족이 말레이로 들어와 시신 확인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직접 DNA 샘플을 받아 신원을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일단 보도를 부인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 경찰청장은 “마카오에 파견된 경찰은 없다. (김정남 친족들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해당 보도는 말레이 경찰이 DNA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날 뉴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말레이 경찰청의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부청장은 “앞으로 하루나 이틀 사이에 유족 중 한 명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수사 돌파구로 기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현재 사건 얼개는 거의 드러났다. 경찰은 전날 추가 용의자로 주말레이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4)의 신원을 공개하며 김정남 피살을 사실상 북한 정권 차원의 국가 테러로 규정했다. 북한 국적 용의자 8명의 범행 전후 행적도 밝혀졌다. 범행 수법 역시 두 외국인 여성이 북한인 용의자들의 사주를 받아 “(독극물) 액체를 김정남 얼굴에 문지른” 독살로 결론 내렸다.
모든 정황 증거들이 범행 배후로 북한을 가리키고 있으나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게 문제다. 북한 국적 용의자들이 범행에 개입한 증거는커녕, 독극물의 정체도 밝혀내지 못해 사인 규명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신 인도의 선결 요건인 신원 확인에 실패해 시신마저 북측으로 넘어갈 경우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경찰은 지금껏 체포 용의자들에게서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며 연일 맹공을 퍼붓는 것도 물증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란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말레이 당국 스스로 북한에 의한 암살 가능성을 내비치고도 시신을 북한에 넘겼다간 부실 수사를 인정하는 꼴”이라며 “신원 확인은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걸림돌은 중국이다. 중국령인 마카오에서 유가족 DNA를 채취하려면 중국 정부의 묵인내지 협조가 필수. 하지만 북한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를 감안할 때 성사 가능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말레이 정부의 DNA 채취를 위한 마카오 방문설에 대해 “협조요청을 받은 바 없다”라며 부인했다. 현지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여전히 말레이, 북한 양국이 정치적 해법을 찾아내기를 원한다”며 “최근 북핵 6자회담 카드를 갑자기 꺼내든 것도 국면전환의 성격이 크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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