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위원장 박명진)가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따른 문예진흥기금 지원 배제 사실을 인정하며 예술인들에 처음으로 사과했다.
문예위는 23일 홈페이지(www.arko.or.kr)에 ‘국민 및 예술인들께 사과의 말씀’이라는 글을 남겨 “금번 문예진흥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받으신 예술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문예위는 “국민과 예술가를 위한 기관으로서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블랙리스트에 의한 지원 배제를 인정했다. 문예위는 특검 수사와 감사원 감사 등 “일련의 조사로 사과가 늦어졌다”며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책임지겠다”고도 했다. 문예위는 이 사과문을 유관 문화예술단체들에도 발송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인 문예위는 한 해 2,000억원 이상의 문예진흥기금을 집행하고 있다.
문예위는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을 준비해 왔다고도 밝혔다. 사과문은 “심사위원의 선정 방식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개선해서 2017년도 사업 심의에 적용했으며 불만사항을 신고 받아 다루기 위해 옴부즈만 제도를 신설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문화예술계의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추가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예위는 최근 발표한 예술공연 등 2017년 지원 대상 사업 745건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지원에서 배제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서울연극제를 포함했다.
하지만 문예위의 사과는 억지춘향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예술계에서 박명진 문예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데다 최근 문예위 노동조합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놓자 마지못해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지적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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