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에서 탄핵정국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혹은 인용 결정이 나오기 전에 박 대통령이 자진 사임하고 대신 사법적 문책을 최소화하는 등 예우를 갖추자는 것이다. 촛불 진영과 태극기 세력이 주말마다 격렬하게 대치해 온 상황에서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불복 등 후폭풍과 혼란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얼핏 괜찮은 방안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뜬금없는 데다 당사자들이 부정적이고 추진 주체마저 불확실해 그냥 접는 게 좋겠다.
얘기는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꺼냈다. "광장에서 촛불과 태극기가 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대립하고 있어 헌재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국론분열을 피할 수 없다. 청와대나 대통령은 사법적 해결에 앞서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요지다. 정치권의 사법적 면책 약속을 담보로 박 대통령의 자진 사임을 끌어내자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 등이 "정치력으로 탄핵 문제를 풀자는 우리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며 '고무적 제안'이라고 반긴 것은 예상된 일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박 대통령 측은 "전혀 가능하지 않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SNS상에서도 '설득력 있는 제안'이라며 자진 사임설이 나온 배경에 공감을 표시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청와대나 친박진영은 헌재 심판 전후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고민의 흔적조차 보여 주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야당에서도 "무슨 소리냐"며 거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제안은 취지와 실효성을 따지기에 앞서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드는 격'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 말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이어지고, 올 들어 계속된 특검 수사와 헌재의 탄핵심판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앓는 과정에서도 책임회피와 자리보전에만 급급해 온 박 대통령 아닌가. 그런 그에게 헌재 심판 후의 혼란을 이유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어색하고 낯설 뿐 아니라 되레 혼란스럽다.
더구나 지금은 헌재 결정이 임박한 시기다. 또 대선 등 예고된 정치일정에 맞춰 변수를 최소화하고 국정 안정을 도모할 때다. 정국 리더십을 상실한 범여권이 '대통령 하야 및 면책' 등 숱한 잡음과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사안을 앞뒤 없이 툭 던지는 것은 의도를 의심받기 꼭 알맞다. 다만 '헌재 결정 존중 및 승복, 그리고 냉정 되찾기' 등 하야론의 배경과 메시지는 잘 새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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