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이 수많은 법률 용어에 노출되고 있다.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자들의 형사재판이 물밀듯이 보도되면서 전문적인 용어들에 저절로 익숙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막상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론 단어가 입가에서 맴도는 경험들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피고'와 '피고인', '대리인'과 '변호인'처럼 비슷한 뜻인데도 상황에 따라 달리 쓰이는 것도 있다니 더욱 머리가 복잡하다. 최근 법조기사에서 여전히 헷갈리는 용어들을 다시 한 번 체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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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vs 피고인
'피고'는 재판 관련 기사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가장 자주 사용하는 법률용어 중 하나다. 피고(被告)는 단어 그대로 풀면 '재판을 당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재판을 청구한 사람인 '원고(原告)'의 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재판을 당하는 사람이 모두 '피고'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민사사건 등에서 재판받는 사람을 '피고'로 칭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재판받는 사람은 '피고인'이다. 검사가 제기한 공소에서 형사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직권남용과 강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최순실(61)씨는 현재 '피고'가 아니라 '피고인' 신분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궁금증 한 가지.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박근혜 대통령의 재판상 신분은 무엇일까. 형사재판이 아니므로 '피고'로 불러야 할까. 아니다. 헌법재판 중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에선 원고나 피고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청구인, 피청구인이란 말을 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피청구인' 신분이다.
변호인 vs 대리인
헌법재판소 탄핵심판만큼이나 대통령을 변호하는 사람들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재판정 안에서 태극기를 꺼내 보인 서석구 변호사, 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의 변론 진행에 큰 소리로 반발한 김평우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을 단어에서 오는 ‘느낌’ 그대로 '변호인'으로 지칭해도 맞는 걸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틀리다. '변호인'은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의 변호를 맡은 사람을 일컫는다. 그외 민사ㆍ가사ㆍ행정사건 등에서는 '대리인'이라고 부른다. 당사자를 대리해 소송절차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형사재판이 아닌 헌재의 탄핵심판에서 대통령 측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변호인'이 아니라 '대리인'으로 불러야 한다. 이미 눈치 챘겠지만 형사재판 중인 ‘피고인’ 최순실씨를 변호하는 이경재 변호사 등은 ‘대리인’이 아닌 ‘변호인’으로 불린다.
참고로 헌법재판은 대리인에게 변호사 자격(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거나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요구한다(헌법재판소법 제25조). 그러나 민사, 형사사건에서는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도 소송 대리나 변호에 나설 수 있다. 소송 당사자 본인이 소송을 대리하거나 수료 전인 사법연수원생이 국선 변호에 나서는 경우 등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각하 vs 기각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위해 법원에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지난 16일 서울행정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양갈래로 나뉜 여론의 희비도 엇갈렸다. 청와대는 "특검이 무리하게 신청한 것에 대해 법원이 단호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반겼고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진영에서는 "법원이 특검 수사의 부당함을 바로잡은 것"이라며 무리한 특검 수사에 대한 청와대 측 승리로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반대로 조속한 탄핵인용을 기대했던 측에서는 “법도 국민 편이 아니구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각하 결정을 특검 수사 방향에 대한 법원의 판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각하'와 '기각'의 뜻을 혼동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이다. '기각'은 법원이 사건을 판단해본 결과 소송 제기자의 주장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인용'의 반대 개념이다. 반면 '각하'는 소송 제기자가 준비물을 갖추지 못했거나 법원에서 판단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이 판단 자체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이 각하 이유로 소송당사자를 규정한 형사소송법상 한계를 지적하고 행정소송법 개정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단적인 예다. 즉 '각하'는 사건 내용을 보기 이전에 자격 적격부터 따진다는 것으로 사안에 대한 법원 판단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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