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정책ㆍ공약 아닌지
정책 라인과 혹독하게 검증
얼굴 달아올라 뛰쳐나가기도
“공약 대부분은 일자리 창출
심야 토론으로 방향성 공감대
30%대 대세 캠프처럼 뜨거워”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대선공약은 유 의원의 가슴에서 시작해 유 의원의 머릿속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 노선이 정책의 출발점이라면, 약자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정책이 무엇이며 이를 우리 상황에 맞게 어떻게 현실화하느냐가 정책의 도착점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책의 출발과 도착 사이에는 유 의원과 대면해 끊임없이 문답하는 과정이 놓여 있다. 가령 저출산 극복 정책에 대한 질문을 거듭하면서 미처 짚지 못한 빈틈을 체크하고 경쟁자의 공세도 차단하는 대화법이 몇 개월 간 지속된다. 선거캠프 정책 라인에게는 유승민이라는 산을 넘어서야 하는 공포의 시간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토론이 유대인의 하브루타 학습과 닮아 캠프 내에서는 “유대(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줄인 별칭)는 넘어갔냐”는 식의 대화가 자주 오간다. 민현주 캠프 대변인은 “국민께 내놓기 전 불량정책 최종 선별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뛰쳐나오기도
정책 도출을 위한 유승민식 산파술은 일종의 리허설이다. 가깝게는 바른정당 경선 경쟁자에서부터, 멀게는 본선 상대 주자나 국민 검증에 앞서 설익은 정책ㆍ공약이 아닌지 스스로 검증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유 의원의 질문은 거칠고 도발적이다. 캠프 한 관계자는 “아주 논리적인 질문도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각의 물음이나 심지어 억지 트집도 있다”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씩씩거리며 나오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 같은 정책 논쟁은 3단계의 쌍방향 끝장토론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캠프는 설명한다. ‘공화ㆍ민주ㆍ정의ㆍ공정ㆍ평등ㆍ보수 등 유 의원이 추구하는 가치ㆍ철학에 부합하는가(일관성 검증)→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방법론 증명)→과거 어느 나라든 채택돼 입증한 바가 있는가(경험주의 실증)’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유 의원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2호 공약 ‘칼퇴근법’에 담긴 퇴근 후 업무지시 근절, 퇴근과 출근 사이 11시간 휴식 보장, 주중ㆍ연중 최대 근로시간 법률로 제한 등의 내용은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안티스트레스법, 연결차단권 등의 사례를 우리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지까지도 꼼꼼히 검증한 대화법의 결과물이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노동보다 자본으로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자본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반시장적 요소가 짙다는 이유로 걸러졌다. 토마 피케티 교수의 ‘글로벌 자본세’를 우리 상황에 맞도록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대기업 재벌이 상품을 팔기 위해 유통,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광고 등의 회사를 설립해 문어발식으로 수평 확장에 나서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지분매각명령제’도 검토됐다. 하지만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이유로 불발됐다. 일견 만기친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지만, 캠프 측은 “상명하달식 정책개발이 아니라 ‘양자공감’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훈 전 의원은 “악마는 늘 디테일에 숨어 있었다”며 “설익은 정책이 나올 수 없는 구조여서 유승민 공약에 야권도 비판의 날을 세우기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유 의원 공약에는 녹색성장, 창조경제, 국민행복처럼 추상적인 정치 선전용어가 없고, 대신 칼퇴근, 육아휴직, 창업국가 등 구체적이고 적확한 용어가 담기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캠프 측은 설명한다. 논쟁은 장기화된 정책 도출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선주자가 학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각개 공약은 일자리 창출로 수렴된다
유 의원은 현재 육아휴직, 칼퇴근, 창업국가, 경제정의, 기초생활보장제 내 부양의무자 폐지 등 5호 공약까지 내놓았다. 다음 정책은 보육과 육아, 교육, 비정규직, 노동, 조세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각개 공약이 산발적으로 발표되는 것처럼 비치지만 캠프 측은 “우리 정책은 두괄식이 아닌 ‘미괄식’”이라며 “이미 발표됐거나 발표될 예정인 공약은 하나하나가 따로 노는 것 같지만 퍼즐이 맞춰지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개의 공약은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수렴된다는 얘기였다. 김희국 종합상황실장은 “결국 일자리가 늘고 가계 수입이 상승해야만 주거ㆍ저출산ㆍ양극화ㆍ불평등 등 사회문제의 근본이 해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지율이 한자리 수에서 답보상태지만 유 의원 캠프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우려와 불만도 적지 않았지만 11일 밤 유 의원이 심야 끝장토론을 해 캠프의 방향성에 대해 탄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진수희 캠프 총괄본부장은 “지지율 3% 언저리의 우리 캠프 분위기가 그날 이후 30%대의 대세 캠프같이 변했다”고 말했다. 캠프는 사석에서 농담도 잘 하면서 맏형이자 큰오빠 같은 이미지의 유 의원이 언론을 통해 진지한 면만 부각된다며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하고 있다. 정작 유 의원은 작위적으로 연출하는 이미지는 정치의 본류가 아니라며 캠프의 각종 제안에 손사래 치고 있다고 한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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