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체적 대안까지 첫 거론
내부 검토후 재계 의견 반영된 듯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상법을 개정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시피 한 경영권 방어제도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20일 밝혔다. 야당 주장대로 상법이 개정되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외국 자본의 공세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만큼 부작용을 보완할 장치를 함께 도입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유 부총리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개최한 ‘최고경영자(CEO) 조찬 강연’에 참석해, “현재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은 외국 투기자본이 이사회를 장악하는 등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위협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회 입법과정에서 문제점을 줄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유 부총리의 이날 발언은 최근 상법 개정이 여야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이후 정부가 내놓은 첫 공식 입장이어서 주목된다. 유 부총리는 앞서 지난 9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상법 개정안은 신중하게 볼게 많다”는 ‘개정에 부정적인’ 원론을 밝힌 데 이어, 이날은 한 발 더 나아가 경영권 방어장치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언급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상법 소관 부처가 법무부여서 그간 기재부는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상법 개정의 경제적 여파가 생각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자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내부 검토에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재계 의견이 상당히 반영된 것 같다”고 전했다.
그간 재계와 학계에서 주로 거론된 경영권 방어 장치로는 차등 의결권과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등이 꼽힌다. 차등 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진 등 장기주식 보유자에게 1주당 1표 이상의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해 비교적 적은 주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포이즌필은 경영진 등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2월 임시국회 내 처리를 목표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 및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골자로 한다. 소액주주의 이사회 참여 통로를 확대해 지배주주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감시하자는 취지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대기업 이사회가 재벌 총수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며 상법 개정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여권과 재계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발하며 상법 개정 논의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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