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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워킹 파트너, 포켓몬 Go!

입력
2017.02.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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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미안해. 너의 집앞이야. 우~우!” 소싯적 낭만을 돌이킬 생각은 없다.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를 흥얼거린다 해서 국정농단의 화기가 가라앉거나 탄핵 정국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비 오는 날 애인 집 앞으로 찾아갈 나이도 아니거니와 씩씩한 소시민 ‘아재’답게 그저 출근을 위해 걷을 뿐이다. 애써 위안하자면 걷기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되새기며! 헬스클럽을 다닐 시간도 모자란 라이프스타일의 소유자이기도 하고.

영종도 하얏트 호텔 로비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유명한 포켓스톱이다. 최민관 기자
영종도 하얏트 호텔 로비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유명한 포켓스톱이다. 최민관 기자

그런 내게 함께 걷는 친구가 생겼다. 바로 ‘포켓몬 고’. 트렌드세터들은 벌써 지루하다고 팽개친 그 게임 말이다. 아직 미혼인 친구가 작년에 애인과 함께 포켓몬의 성지 일본을 다녀올 때 나는 제주 한라산에 올라 한라산 소주를 마셨고, 다들 국내 유일한 포켓몬 출몰지였던 속초로 향할 때 지인에게 닭강정 배달이나 부탁했다. 그렇다. 식음은 좋아하지만 게임에는 무심한 터라 한달 전 게임의 국내 정식 발매 또한 거들떠보지 않았다. 짬이라고 해봐야 출퇴근 시간인데 평소 모터사이클을 타고 오가는 터라 휴대폰 게임을 즐길 수 없는 환경 탓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포켓몬이 동반자가 된 것이다.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지하철을 애용하는데 집에서 역까지, 역에서 회사까지가 꽤 멀다. 자그마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도 지겹거니와 걷는데 흥미를 돋울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다 출장을 빙자해(?) 남이섬으로 포켓몬을 잡으러 떠났던 후배의 기사 ‘남이섬에서 포켓몬 고 해보니’를 보고 흥미가 동했다. “어라? 재미있겠는데?” 바로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다운 받았다. “와우!” 회사 앞에 포켓스톱이 있어서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도 아이템을 줍는다. 다 자란 체하는 아들과 공유하는 얘깃거리도 되거니와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기분마저 선사한다. 그래서 이제는 출근길에 요 자그마한 괴물(?)들이 없으면 적적할 정도가 됐다.

포켓몬 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증강현실의 즐거움에 현대인의 심리를 잘 분석한 수작이다.
포켓몬 고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증강현실의 즐거움에 현대인의 심리를 잘 분석한 수작이다.

내가 포켓몬 고를 즐기는 방식은 단순하다. 나는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경쟁은 현실에서도 충분하고 패배는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니 체육관에서의 배틀 또한 중요치 않다. 빠른 걸음으로 포켓스톱을 들러 아이템을 얻고 불쑥 튀어나오는 야생 포켓몬을 잡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포켓몬을 낚아챌 때 ‘엑설런트’가 뜨면 즐거울 뿐이다. 포켓머니를 위해 내 소중한 달러를 낭비하는 짓 또한 금물이다. 그저 티끌 모아 태산처럼 아이템을 모아 발챙이를 슈륙챙이로, 슈륙챙이를 강챙이로 진화시키는 게 즐겁다. 폴리곤과 피카츄의 재주넘기를 보면 포상 삼아 사탕 한 알 선물하고 힘을 키워준다.

게임 속 포켓몬을 볼 때마다 뿌듯해진다. 마치 애완동물을 보는 것처럼.
게임 속 포켓몬을 볼 때마다 뿌듯해진다. 마치 애완동물을 보는 것처럼.

요즘은 스라크를 핫삼으로 진화시키고 싶은데 특수 아이템이 없어서 스톱포켓마다 확인하는 중이다. GPS 조작 프로그램을 통한 포켓몬 획득은 내겐 의미가 없다. 애착 가는 포켓몬만 남기는 터라 하나하나가 내겐 소중하다. 처음부터 함께한 나시, 아들이 처음으로 포획한 야돈를 진화시킨 야도란, 요즘 한참 데리고 다니는 미뇽이 귀엽기만 하다. 몇 종 빼고 겨우 다 모았더니 며칠 전 새로운 캐릭터를 대거 풀어 사용자를 다시 유혹하는 개발사 니안틱의 마케팅 전략이 얄미울 뿐이다.

문득 스타벅스에 앉아 포켓몬 고에 빠져들어 눈 앞의 애인은 팽개치고 게임만 하던 여자가 생각난다. 레벨을 높이고 아이템을 진화시키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지인도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포켓몬 고의 즐거움은 내가 걷는 세상 속에 가상의 캐릭터가 나와 함께 한다는 동질감에 있다. 가상세계의 즐거움은 딱 거기까지다. 게임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 게임의 중독성에 빠져든 거라 진단한다. 그럴 때는 휴대폰을 끄고 눈 앞의 상대에서 집중해 웃고 떠들어라. 그게 당신을 현실에서 만나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포켓스톱이 즐비한 출퇴근 길은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의 명당과 같다.
포켓스톱이 즐비한 출퇴근 길은 “심봤다”를 외치는 심마니의 명당과 같다.

어느 날엔가는 운전대를 잡고 포켓몬을 잡는 사람도 봤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한참을 멈춰 선 게 아닌가! 장소는 회현사거리, 차종은 쏘나타, ‘용자’는 양복을 입은 멀쩡하게 생긴 30대 중반 사내였다. 뒤에서 한참 “빵빵”대는데 미적거리는 폼이 분명 포켓 스톱에서 떠나기 싫은 게 분명해 보였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인 내가 헬멧 실드를 열고 “포켓몬 그만 잡으라”고 씩 웃었더니 그제서야 화면을 긁던 손짓을 멈추더니 출발했다. “포켓몬이 그리 좋으면 버스나 택시를 타지 대관절 왜 운전대를 잡는담?”

말 나온 김에 팁 하나 소개한다. 둥지(특정 포켓몬이 출몰하는 구역)나 황금 노선의 소개는 아니다. 포털 검색창에 문구 하나 넣으면 나타나는 온갖 노하우에 하나를 더할 생각은 없다. 추천하건데 주말에 가족과 함께 시청역 12번 출구를 찾으시라. 덕수궁과 시립미술관 투어를 하면 마음의 양식은 기본이요, 포켓몬 포획은 덤이다. 포켓스톱의 보고랍시며 종로3가를 찾아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건 솔직히 겸연쩍은 일이니까. GPS를 조작해 로스앤젤레스 투어를 하는 것도 분명 ‘오버’의 사례임이 분명하니까!

서울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시민들이 포켓몬고 게임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서울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시민들이 포켓몬고 게임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주말은 끝났고 다시 나타난 월요일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이제 퇴근할 시각이다. 회사를 나서며 앱을 켜니 예의 익숙한 문구가 화면에 뜬다. “화면을 보면서 걷거나 운전 중 플레이는 하지 마십시오.” OK를 쓱 누르고는 지하철 시청역을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포켓스톱에 멈춰 서면 그제야 씩 웃으며 화면을 응시한다. 오늘도 안전 보행을 다짐하며!

한국일보 모클팀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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