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외국인 여성 숙련된 테러
범행 마친 후엔 재빨리 사라져
金 공격받고도 꼿꼿이 보행
치료 도중 급격히 상태 악화
신종 독극물, 암살 기법 가능성
2.33초.
13일 사망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에게 물리적 위해가 가해진 시간. 그는 이 찰나의 공격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20일 일본 및 말레이시아 언론 등이 공개한 피습 당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김정남 피살을 둘러싼 의문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독극물 추정 테러를 당하고도 김정남이 상당시간 멀쩡한 상태로 활보하고, 당초 단순 가담자로 알려졌던 여성 용의자들이 고도로 숙련된 범행 수법을 선보이는 등 암살 미스터리를 풀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사건 당일 김정남의 동선을 따라 편집된 5분 분량의 영상은 그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 홀로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옅은 푸른색 재킷에 청바지 차림을 한 김정남은 오른쪽 어깨에 검은색 가방을 메고 출국장에 입장해 마카오행 비행시간을 확인하려는 듯 잠시 비행정보가 표시된 전광판을 올려다본다. 이어 무인발권기 쪽으로 발길을 옮겨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한 여성이 화면 왼쪽에서 그에게 접근한다. 뒤따라 빠른 걸음으로 오른쪽에서 다가온 흰색 상의의 다른 여성이 김정남 등 뒤에서 천 같은 물체로 얼굴을 감쌌고 그는 크게 휘청인다. 일을 마친 두 여성은 이번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재빨리 사라진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고작 2.33초. 당시 주변은 인파로 붐볐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거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화질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의 정확한 역할 분담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김정남 얼굴을 두 팔로 감쌌던 인물은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 앞서 그에게 다가갔던 여성은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로 추정된다. 흐엉이 천으로 김정남의 얼굴을 가리자 아이샤가 독액을 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도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들이 김정남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며 독살 가능성을 인정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김정남은 다음 장면에서 공항 정보센터의 한 여성 직원에게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무언가를 설명한다. 해당 직원은 그를 공항 경찰관들에게 인계했고, 이들은 김정남을 다시 청사 2층 메디컬클리닉(치료소)으로 데려 간다. 이때까지 김정남은 꼿꼿이 걸어서 치료소로 이동할 만큼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을 만지거나 호흡이 가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화면에서 김정남은 클리닉 앞 구급 침대에 누워 내부로 실려 갔고 이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난다.
영상을 통해 새롭게 확인된 사실은 김정남이 독극물 공격을 받고도 최소 5분간 의식이 온전했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클리닉 안에서 재킷을 벗고 축 늘어진 채 의자에 누워 있는 김정남 사진으로 미뤄볼 때 그는 치료 도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불과 2,3초 만에 별다른 흔적도 남기지 않고, 공격 한참 뒤에야 치사율이 갑자기 높아지는 독극물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CCTV 화면이 없었다면 김정남 피살 사건은 완전범죄로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법의학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피습 직후 의식을 유지한 것은 독극물을 주입했을 때 정황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주입 즉시 반응이 나타나는 정맥주사가 아닌 이상 독극물로 인한 사망까지는 통상 1~2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남이 사건 당일 오전 9시쯤 피습 후 오전 11시 병원에 도착해 사망선고를 받은 시간과 일치한다.
그러나 어떤 독극물이 범행에 이용됐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실제 말레이시아 경찰은 독극물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해 김정남 시신에 대한 재부검을 진행 중이다. 캐나다 군사전문가인 핑거푸(平可夫)는 현지 중문매체 중국보(中國報)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1950년대 말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스프레이 건으로 요인을 암살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심장마비로 자연사한 것처럼 보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암살 수법이다. 김정남 암살에도 성분이 남지 않은 신종 독성 물질과 기법이 사용됐다면 배후 추적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정빈 단국대 법학과 석좌교수는 “청산가리, 사린가스 등 지금까지 단기간에 죽음을 초래하는 약품은 다 알려진 상황이라 부검결과 발표가 이렇게 늦춰지지는 않는다”며 “새로운 약품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쿠알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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