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강연에선 400여명 관객들 웃음으로 호응
문재인 “분노 빠졌다” 안철수 “의도보다 결과 중요”
안희정 측 “특유의 철학적 화법, 오해 생긴 것” 해명
안희정 충남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의(善意)를 인정한 것일까. 반어적 비판이었다는 안 지사의 적극 해명에도 안 지사의 ‘선의 발언’이 정치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지지율 20%대를 돌파하며 한껏 고무됐던 안 지사 캠프는 당혹감 속에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문제가 된 발언은 19일 부산대에서 열린 1시간 20분짜리 ‘즉문즉답’ 강연 초반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긍정 평가한 뒤 불거졌다. 페이스북 라이브 동영상을 보면, 미소를 띤 채 무대에 선 안 지사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하고 10초간 뜸을 들이자, 400여명의 청중들은 웃음과 박수를 10여 초간 보내며 먼저 호응한다. 그러자 안 지사는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을 위해서 좋은 정치 하려고 그랬다. (관객들 웃음) 근데 뜻대로 안 된 것이다”는 말을 내뱉는다. 안 지사가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 대기업의 많은 후원금을 받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이다”는 대목에서도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후 안 지사는 “그러나 그것(선의)이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부연했다.
안 지사 측 캠프는 20일 “현장 분위기에 취해 비유와 가정법을 섞어서 말하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다”고 해명하면서도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했다. 안 지사는 전날 밤 참모들에게 “농담도 이제 반어법으로 하면 안되겠다”면서 자청해서 페이스북에 해명 글을 올렸다고 한다. 안 지사는 이날도 대전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무리 선의라 할지라도 법을 어겼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거듭 진화에 나섰다.
이날 저녁 한 방송 인터뷰에 출연해서도 “누구의 주장이라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소신이고 그래야 대화도 가능하지만 (박 대통령이) 동원한 모든 수단이 불법이었기에 그 전체를 선한 의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고 재차 해명했다. 그러면서 “제 얘기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거 안다. (다만) 광장의 시민 한 사람으로서 저도 싸웠고, (앞으로) 저도 같이 분노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권에선 안 지사의 정체성까지 공격하는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안 지사와 중원 공략을 다투는 국민의당은 “보수의 얼굴을 했다가, 진보의 얼굴로 바꾸는 아수라 백작 같다”고 날을 세웠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정치인에게는 의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결과”라며 막스 베버가 주장한 정치인의 책임 윤리를 빗대 꼬집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너무 나갔다”거나 “아마추어 같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당장 문재인 전 대표는 “안 지사가 선의로 했다고 믿지만, (문제는) 분노가 빠져 있다”며 “추운 겨울날 촛불 들고 고생한 국민들의 정당한 분노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촛불 민심을 앞세워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선을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별렀다.
보수 진영에서는 안 지사의 발언을 왜곡해 탄핵의 부당함을 뒷받침하는 주장으로 악용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됐다. 안 지사 캠프 내부에선 안 지사 특유의 ‘철학적 화법’이 불러온 오해라는 반응이다. 권오중 정무특보는 “선의란 말은 안 지사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표현인데, 본인의 소신과 철학을 어필하는 데 있어 보다 대중적 언어로 다듬어질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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