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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최소 1년전 계획…"리정철이 현장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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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최소 1년전 계획…"리정철이 현장 지휘”

입력
2017.02.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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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 라시드 이브라힘(왼쪽) 말레이시아 경찰부청장이 19일 쿠알라룸푸르 경찰청 청사 강당에서 김정남 피살사건 수사결과 발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왼쪽) 말레이시아 경찰부청장이 19일 쿠알라룸푸르 경찰청 청사 강당에서 김정남 피살사건 수사결과 발표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이 장기간 북한 정권 차원에서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 암살’로 결론이 나고 있다. 사망 원인 등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을 배후 세력으로 보고 있다. 근거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용의자 대부분이 북한 국적자라는 점이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청 부청장은 19일 브리핑에서 17일 검거된 리정철(47) 외에 리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나머지 용의자들의 신원을 공개하며 북한 국적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북한인 리지우(30)와 신원 불상 2명을 추적 중인 사실도 공개했다. 경찰이 수사상 이유를 들어 북한을 사건 배후로 못박지 않았으나 여성 용의자 2명을 제외하고 최소 6명의 연루자가 북한인으로 판명 난 만큼 북한 소행설을 입증하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경찰 조사와 현지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암살 시나리오는 최소 1년 전 수립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적의 암살 주모자 5명은 2011년 말 김정은이 내린 ‘스탠딩 오더(취소할 때까지 유효한 명령)’에 따라 지난해 초부터 김정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자주 드나드는 김정남의 출ㆍ입국 패턴이 드러나면서 공항을 암살 장소로 점찍었다. 노출이 비교적 쉬운 공항은 범행 은폐 장소로 안성맞춤이었고 이들은 인파로 붐비는 틈을 타 김정남을 독살하기로 마음 먹었다.

대강의 암살 얼개가 나오자 일당은 범행을 대리할 조력자 물색에 들어갔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29)이 포착됐다. 일당 중 한 명인 A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 흐엉에게 접근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흐엉의 환심을 사려 베트남 집에 다녀 오고 함께 한국 여행을 하기도 했다. 흐엉에 신뢰를 줬다고 판단한 A는 “장난으로 몰래카메라(몰카) 비디오를 찍어 보자”고 제안하면서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달에는 나이트클럽 호스티스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여성 시티 아이샤(25)도 끌어 들였다. “일본 TV에 방영될 몰카 영상물 촬영에 참여하면 100달러를 주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를 흐엉에게 소개했다. 나머지 일당과 합류한 이들은 몰카를 빙자한, ‘스프레이를 뿌리고 천으로 덮는’ 암살 훈련을 반복했다.

디 데이는 13일로 정해졌다.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거쳐 마카오로 출국한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현장 지휘는 리정철이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적어도 지난해 8월부터 말레이시아에 체류하며 현지 사정을 꿰뚫고 있어 범행 시점, 도주 경로 등 암살 과정을 총괄하는 행동대장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주모자 4명도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7일 사이 차례로 입국했다.

암살단은 범행 전날 공항 곳곳을 돌아 다니며 답사까지 마쳤다. 여성 용의자 2명이 상대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장난을 치는 등 범행을 암시하는 증거는 고스란히 공항 폐쇄회로(CC)TV 화면에 담겼다. 범행 당일 공항에 나타난 용의자는 6명. 흐엉과 아이샤는 공항이 가장 혼잡한 시간대인 오전 9시(현지시간) 출국장에 홀로 나타난 김정남에 다가 갔다. 흐엉이 김정남의 목을 잡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자마자 아이샤는 얼굴에 독액 의심 물질을 뿌렸다. 철저한 예행연습 덕분인지 범행은 불과 5초 만에 전광석화처럼 끝났다. 검은색 모자를 쓴 일당 중 한 명은 이들 뒤에서, 나머지 3명은 출국장이 훤히 보이는 인근 커피숍 비빅 헤리티지에서 1시간 30분전부터 대기하며 범행 장면을 지켜 봤다.

범행을 마친 일당은 헤리티지에 모여 잠시 얘기를 나눈 뒤 뿔뿔이 흩어졌고, 리정철을 뺀 북한 국적 용의자 4명은 당일 옷을 갈아 입고 항공편으로 말레이시아를 떠났다. 이브라힘 부청장이 “(용의자들이) 어디로 떠났는지는 수사상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가운데 일본 교도(共同)통신은 이날 이들이 이미 17일 북한에 입국했다고 보도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리정철 외 북한 국적의 용의자 4명 중 홍송학(오른쪽 사진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리재남, 리지현 등 3명이 13일 여객기 티켓을 소지한 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세팡ㆍ쿠알라룸푸르=뉴스1ㆍ로이터 연합뉴스
리정철 외 북한 국적의 용의자 4명 중 홍송학(오른쪽 사진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리재남, 리지현 등 3명이 13일 여객기 티켓을 소지한 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내에서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세팡ㆍ쿠알라룸푸르=뉴스1ㆍ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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