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존재조차 몰랐던 늦둥이 막냇동생이 불쑥 나타났다. 넉살 좋게 “누부(누나)야” “형님아”라 부르며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녀석 때문에 일상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돼버린다. 수년간 연락을 끊고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냈던 3남매는 막냇동생 양육을 서로에게 떠넘기려다 녀석의 오지랖으로 인해 한바탕 소동에 휘말린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요원(37)은 영화 ‘그래, 가족’(상영 중)에 대해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라 오히려 새롭게 느꼈다”고 했다. 가족애를 주입하는 신파가 아니라서 더 끌렸다는 얘기다.
이요원은 방송사 기자로 일하는 둘째 오수경을 연기한다. 무능한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며 아등바등 살아왔는데 노력 끝에 얻어낸 특파원 자리를 ‘금수저’ 후배에게 빼앗길 처지다. 수경은 복수를 위해 모종의 작전을 꾸미는데 여기에 막냇동생이 끼어들면서 수경의 감춰진 인간미가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이요원은 오이냉국까지 뒤집어쓰고 살짝 망가진다. 이요원은 “원래 시나리오에선 물김치였다”고 웃으며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경은 상처투성이 속내를 감추려고 더 냉정하고 까칠하게 군다. 실제 이요원과도 닮은 캐릭터다. “저도 다정다감하진 못해요. 애교도 없고요. 하지만 한번 사람을 사귀면 관계가 오래 가요. ‘츤데레’에 가까운 성격이죠. 원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류준열씨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해요(웃음).”
이요원의 성향은 작품 선택에서도 읽힌다. SBS ‘황금의 제국’(2013)과 JTBC ‘욱씨남정기’(2016), MBC ‘불야성’(2017) 등 최근 출연작에서 똑 부러지게 할 말은 하고 때로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사이다’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드라마에서만큼은 목표가 뚜렷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남성 캐릭터에 편중돼 있어서 기회가 더 드물잖아요. 물론 영화에서 기회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중간에 제작이 무산된 경우가 꽤 많았어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영화 공백기도 생겼고요.”
하지만 그 사이 이요원을 선망하는 팬은 더 늘었다. 대부분 여성들이다. 특히 ‘불야성’에서 보여준 유이와의 ‘워맨스(여자들의 우정)’에 사생팬(스타의 사생활을 쫓는 열성팬)까지 생겼다. “유이가 사생팬의 뜻을 알려줬어요. 제가 아이돌이 된 기분이던걸요. 어떤 중국팬은 유이와 저를 주인공으로 소설도 썼더라고요.”
이요원은 1998년 영화 ‘남자의 향기’로 데뷔해 올해로 배우 생활만 19년이 됐다. “욕심 부리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시청률이든, 팬이든, 인생이든, 하나라도 얻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도 했다. 지나친 겸손이 아니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저는 제 위치를 잘 알아요. ‘그래, 가족’도 당시 저에게 출연 제안이 들어온 유일한 영화였다니까요(웃음).”
이요원은 30대 후반이 되면서 스스로 여유로워졌다고 느낀다. 과거엔 결혼과 아이, 가정 생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결혼이 작품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거리낌이 없다. “제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특히 저에게 관심 없는 분들이요(웃음).”
40대를 앞두고 작은 소망도 보탰다. “30대 지금 나이에만 연기할 수 있는, 조금은 말랑말랑한 느낌의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예전 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잔잔한 감성의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고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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