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권일의 글쟁이 페달] 자전거를 타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

입력
2017.02.17 11:03
0 0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얼굴 좋아지셨네요!”라고 말한다. 순간 언짢아진다. 살 쪘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 내 체중은 큰 변화가 없다. 술 많이 마신 다음날 좀 많이 붓고, 아니면 덜 부을 뿐이다.

7, 8년 전부터 늘 “살 뺀다”는 소릴 입에 달고 살았다. 대학 1~2학년 무렵까지 저체중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둥근 편이라 말랐다는 소릴 들어본 기억은 별로 없다. 삼십대 초반 이후 비만이 됐고, 30대 후반부터는 명실상부 고도비만에 들어섰다. 로드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때부터 살이 엄청 쪘다. 그러니까 나의 자전거 이력은 다이어트 실패의 역사다. 알려졌다시피 사이클이란 체력소모가 엄청난 운동이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도 다이어트에 실패했는가?

"힘들어 죽을 것 같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저체중자 시절엔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들이 못마땅했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살이 쪄보니 알게 됐다. 단지 이게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라는 것을. 2009년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은 직후부터 2개월 동안 체중이 7㎏ 늘어났다(물론 그 이후로도 계속 살이 쪘다). 담배가 없으니 불안감 때문에 책상에 앉아도 글이 안 나왔다. 하지만 마감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써야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해 옆에 단 것들을 쌓아놓고 먹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라이딩을 나갔지만 살이 빠지긴커녕 점점 몸이 불었다. 로드바이크를 탈 때는 상체를 기역자로 꺾다시피 해야 공기저항을 덜 받아 빨리 달릴 수 있는데, 맹꽁이마냥 튀어나온 배 때문에 몸이 접히질 않았다. 아니 접히는 건 고사하고 페달링할 때마다 허벅지가 배를 치는 바람에 헛구역질이 나왔고, 좀 무리한 날은 라이딩 중 먹은 걸 다 토해내기도 했다. 살이 찌면서 혈압도 높아지고, 온갖 기기묘묘한 질병들이 계절마다 엄습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잔병치레 심하긴 했어도 그때까지 나는 살이 찐다고 그렇게 몸 상태가 나빠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다이어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고 설령 살이 쪄도 자전거 좀 열심히 타면 자연히 살도 빠지겠거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사이클 잘 타는 아저씨들 몸을 유심히 관찰하게 됐다. 날씬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터프하게 자전거를 타는데도 배가 불룩 나온 분들, 몸 전체가 토실토실 복스러운 분들이 제법 있었다.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렇게 힘들게 운동을 하는 양반들이 왜 살이 안 빠지지?’

경력이 좀 있는 아마추어들은 한 번의 라이딩에 120~150㎞ 정도는 기본으로 탄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로 간다. ‘업힐(uphill)’만 10㎞라는 미시령을 자전거 타고 넘어간다는 뜻이다. 초보들한테 절대 무리인 운동량이다. 소모 칼로리로 치면 나의 3배는 족히 될 정도로 사이클을 타는 사람인데 나보다 뚱뚱한 경우도 있었다.

사이클리스트는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가
사이클리스트는 무엇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가

‘비밀’은 단순한 데 숨어 있었다. 음식이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는데도 살이 전혀 빠지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자전거 타고 나서, 그리고 평소에도 밥과 술과 고기를 양껏 먹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라이딩 다녀와서 삼겹살 1.5인분에 밥 한 그릇, 소주 한 병은 기본으로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정말로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운동 후 식욕이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딱 입맛이 돌 정도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서 ‘열심히 운동했으니 이 정도는 먹을 자격이 생긴 거다!’ 이러면서 폭식을 해왔다.

요컨대 ‘왜 자전거를 타는데 살이 안 빠지는가?’에 대한 답은 ‘많이 먹어서’다. 일주일에 수천 킬로미터를 일상적으로 달리는 프로 선수들의 식단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하물며 아마추어들이야…. 금연 스트레스 때문에 낮이건 밤이건 닥치는 대로 집어먹고, 일주일에 고작 200~300㎞ 자전거를 탔던 나의 살이 빠지기는커녕 점점 쪘던 이유 역시 명백하다. ‘많이 먹어서’다.

더 정확히 말해본다면 과거 나는 운동의 효과를 과대평가하고, 섭식의 효과를 과소평가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이어트에서 운동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섭식을 도외시한 다이어트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명백하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현대식 라이프 스타일과 원시적 수렵채취생활의 에너지 소비량에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비만은 활동량이 아니라 음식 섭취량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명을 그저 유지하는 데만 에너지의 70% 이상을 소모(기초대사)한다. 반면 근골격을 움직여서 소모(활동대사)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훨씬 작다. 다이어트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이클은 생각보다 덜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난 여전히 자전거를 탈 것이고 또 좋아할 것이다. 단지 다이어트 기구로 보기에 자전거는 지나치게 아름답고 즐거운 발명품이다.

기초대사율과 활동대사율
기초대사율과 활동대사율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