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박한 대선 일정에 비추어 그 전에 개헌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중략) 이번 촛불시위는 1987년과 같은 개헌운동이 아닐 뿐 더러 굳이 말한다면 호헌운동에 가깝다.”
탄핵과 조기대선, 그리고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의가 풍성한 가운데 백낙청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이 개헌론을 비판했다. 17일 발간될 예정인 계간지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에 실릴 ‘촛불의 새 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라는 글을 통해서다.
백 편집인은 이 글에서 지금의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개헌론을 “실제 성사가 되든 안 되든 개헌 추진을 고리로 ‘빅 텐트’ 또는 ‘스몰 텐트’를 쳐보려는 정략적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정략이 아닌 순수한 충정에서 나온 주장이라 해도 “시민보다 국민을 앞세우는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백 편집인도 지금 헌법의 개정 필요성 자체는 인정한다. 1987년 체제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많았고 실제 지방분권이나 국민 기본권 신장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손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마땅히 헌법개정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금 탄핵국면과 촛불시위는 “헌법이 안 지켜지던 나라를 헌법이 지켜지는 나라로 바꾸”려는 운동이다. 마치 최순실 게이트가 제도적 문제점들 때문에 생겼고 제도를 잘 고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백 편집인은 개헌보다 더 시급한 과제로 ‘이면헌법의 철폐’를 내걸었다. 이면헌법이란 ‘분단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국민 기본권이 제약되는 상황’을 말한다. ‘빨갱이’라 지목 당하는 순간, 그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은 존재로 내버려지는 상황이다. 백 편집인은 한계가 있다 해도 “1987년 헌법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획기적으로 제한했고, 그 헌법만 제대로 지켜졌어도 상당 정도의 분권형 정부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개헌론자들은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내세우는데, 실상 이 문제의 뿌리에는 ‘종북좌파’라 규정짓고 배제하는 이면헌법의 작동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면헌법이 있는 한, 성문헌법을 고쳐봤자 본질적 변화는 불가능하다.
이면헌법 폐기를 위해서는 일단 기존 헌법을 섣불리 고치기보다는 지켜내야 하고, 그 다음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 헌법 개정은 그 뒤 또 다른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문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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