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스스로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민간에도 기업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한 의무고발 요청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전속고발제에 따라 오직 공정위만 고발권을 갖고, 감사원과 조달청, 중소기업청 등 정부기관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반드시 고발토록 한 의무고발요청제를 시행해 왔다. 하지만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는 물론, 주요 대선 주자들까지 일제히 공정위의 전속고발제 자체를 폐지하겠다고 나서자 공정위가 전속고발제를 유지하되, 의무고발요청권을 민간에도 부여하는 절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정치권이 전속고발제 폐지에 나선 건 중소ㆍ벤처기업들의 오랜 불만이 누적된 결과다. 중소ㆍ벤처기업들에 대한 대기업의 특허 탈취, 정부 조달 및 하청 관계에서의 각종 불공정행위와 갑질은 중소기업 성장은 물론, 건강한 산업생태계 형성을 방해하는 대표적 부조리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는 고질적이라 할 정도로 대기업 불공정행위에 대해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데다, 의무고발요청권을 가진 정부기관 역시 고발요청권을 거의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경제민주화 차원의 개혁입법으로 누구나 불공정행위를 고발할 수 있는 전속고발제 폐지를 들고 나온 상황이다.
공정위 전속고발제 폐지가 대기업, 또는 경쟁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시달리는 수많은 중소ㆍ벤처기업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 폐지해 마땅하다. 또한 지금 분위기라면 전속고발권이 실제로 폐지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속고발제 전격 폐지 역시 취지와 달리, 중소ㆍ벤처기업의 활동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선의의 역설’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2013~2015년 불공정행위 등으로 공정위에 신고된 기업 8,097곳 중 대기업은 15%였던 반면, 85%가 중소기업이었을 정도로 중소기업 간 이해충돌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불공정행위 관련 소송이 벌어질 경우, 대기업은 사내 법무팀과 막강한 로펌을 통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끊임없이 뒤얽히는 송사가 오히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장애물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전속고발제 폐지가 산업현장을 ‘소송 지옥’으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전속고발제 당장 폐지만이 능사가 아니라면, 이번 법 개정에선 일단 민간에 의무고발요청제를 확대하는 공정위 방안을 적용한 뒤, 시행 상황을 보며 추후 전속고발제의 존폐를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