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45)씨는 올 초 친구 A(45)씨의 취중진담을 들었다. “필리핀에서 불법 스포츠토토로 번 50억원을 국내에 숨겨뒀다.” 2014년부터 도박에 빠져 2억원이 넘는 도박 빚에, 사채업자들 독촉에 시달리던 유씨는 솔깃했다. ‘저 돈을 가질 수만 있다면 빚도 청산하고 수십억 원을 챙길 수 있지 않은가. 불법이라 신고도 못할 텐데.’
심중에 눈덩이처럼 커지던 모략은 차츰 얼개를 갖춘 범죄 계획이 됐다. 유씨는 직장 후배였던 강모(39)씨와 강씨 친구 오모(39)씨를 끌어들였다. “2억원씩 준다”는 말에 둘은 흔쾌히 나섰다. 흉기와 케이블 선, 청 테이프 등 범행도구도 챙겼다.
유씨는 고교 동창으로 4년 전 다시 만나 흉금을 터놓고 지내던 A씨와의 우정을 악용했다. A씨는 유씨 집 장만을 위해 4억5,000만원을 빌려줄 만큼 친구를 믿었다. 지난달 9일 유씨가 “집을 팔아 돈을 갚겠다”고 전화를 걸자, A씨는 기꺼이 경기 남양주시 유씨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A씨를 반긴 건 보은이 아니라 유씨 일당의 무자비한 폭행이었다. 쓰러진 A씨는 양 손발이 묶인 채 1시간 동안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A씨가 현금을 보관한 장소를 유씨 일당에 털어놓자 이들은 50억원을 여행용가방 6개에 나눠 담아 달아났다.
분을 이기지 못한 A씨가 자신의 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유씨 일당이 캄보디아로 도망쳤다가 돈을 가지러 잠깐 귀국한 틈을 타 유씨 등 3명을 10일 붙잡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2일 유씨 등 3명을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친구에게 강도를 당했지만, 본인도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사실이 드러난 A씨는 도박개장 혐의로 불구속 입건될 예정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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