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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셀프빨래방

입력
2017.02.1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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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웃에 사는 친구가 셀프빨래방에 가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강아지가 이불에 실례를 했단다. 나도 차렵이불 한 채를 들고 따라 나섰다. 늦은 밤, 빨래방엔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이불에다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소다를 뿌려 넣고 커다란 세탁기를 돌렸다. 내가 중얼거렸다. “뭐가 이래. 적어도 24시간 셀프빨래방이라면 싱글대디 한 사람쯤 아이 데리고 나타나야 하고 일에 찌든 워킹맘 두엇 피곤한 얼굴로 빨래 돌려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사람 사는 얘기도 주워듣고 그래야지!” 친구가 낄낄거렸다. 실제로 나는 먼 도시에서 지낼 때마다 빨래방에서 숱한 얼굴들을 훔쳐보았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 도쿄에서 6개월쯤 살 때에는 참 지겹도록 가는 비가 내려서 빨래를 널 수가 없었다. 늘 눅눅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 앞 빨래방엘 자주 갔는데 그럴 때면 사람 구경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앞머리를 동그랗게 깎은 키 작은 남자는 빨래를 넣어두고 언제나 같은 책을 읽었다. 일본어를 몰라 제목은 모르겠지만 몇 번을 마주쳐도 같은 책이었다. 노란 머리 여자는 쇼핑백에서 요란한 드레스들을 꺼냈다. 저렇게 반짝이가 달린 실크 드레스를 세탁기에 넣어도 되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이른 오후에 빨래방에 들르는 듯했다. 신주쿠에서 제일 큰 유흥가이기도 해서 그런 여자들이 흔했다. 엄마나 아빠를 따라온 꼬마들이 드레스 자락에 몰래 손을 대 보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빨래가 끝나면 나는 근처 식당에서 우동을 먹었다. 테이블 밑에 둔 빨래가방에서 여태 온기가 흘렀고 그러면 종아리가 따끈했다. 여름이어도 그건 좋았다. 사람 구경하러 나섰다가 차렵이불 한 채만 빨고 왔다. 돌아오는 길엔 우동집도 문을 닫았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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