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이 시민과 함께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 퇴진행동과 그 동안 광장에 모인 1,000만이 넘는 시민이 없었다면 대통령을 탄핵하고,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던 김기춘을 구속하고, 이재용을 수사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연인원 1,000만이 넘는 시민이 광장에 모여 15차에 걸쳐 촛불집회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가 시민의 이해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권 정당이 제 역할을 했다면 추위와 눈보라에 천만 시민이 광장에 나와 늦은 밤까지 촛불을 밝힐 이유는 없다. 이는 시민이 촛불을 밝힌 이유가 단순히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든 시민과 그 촛불을 바라보는 시민의 요구는 분명하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는 수구세력과 정경유착, 불평등, 재벌과 검찰로 대표되는 특권세력이 쌓아온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퇴진행동’은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라는 시민의 요구를 담아내고 실천하기 위해 구성되었지만, 정작 시민은 정권 퇴진을 넘어 한국 사회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예단할 수 없다. 더욱이 탄핵을 반대하는 수구세력의 정치공세가 날로 심해지고,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키고 부역했던 새누리당은 당명을 바꾸며 수구세력을 결집시켜 대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대선보다 정권 퇴진이 먼저인 이유이다. 그렇다고 퇴진행동으로 모인 민의를 정권 퇴진으로 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은 퇴진을 넘어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적폐를 청산할 주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권교체는 적폐 청산과 개혁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끌어내리고,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서 적폐가 일소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1997년 이후 민주당이 10년 동안 집권했지만, 한국사회는 1997년 이전보다 더 불평등해지고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책임을 민주당 정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고 해도, 정권교체가 반드시 사회경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심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보수정부 9년을 경험한 시민은 “그래도 정권을 교체하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1,000만이 넘는 시민이 15주 동안 광장에서 촛불을 밝힌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퇴진행동은 정권 퇴진과 함께 해산하고 새로운 대중조직으로 거듭나야한다. 퇴진행동을 해산해야 하는 이유는 ‘촛불시민혁명’은 해방 이후 역사의 변곡점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민의 실천적 민주주의를 계승해야하기 때문이다. ‘촛불시민혁명’은 그렇게 다시 역사 속에 살아서 미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퇴진행동이 정권 퇴진을 넘어 각자의 정치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순간 강철처럼 단단했던 광장의 대오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힘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퇴진행동’은 정권교체가 시민의 직접적인 민주주의 실천의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정부가 시민의 요구를 실천하도록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전국적 대중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선 각 당의 대통령 후보에게 시민의 개혁적 요구가 무엇인지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그 누군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것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힘에 의해서가 아닌 수많은 시민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어쩌면 탄핵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부가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탄핵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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