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 <37> 전남 폐창고ㆍ공장들
전남지역의 낡고 오래돼 철거위기에 놓인 대형 창고와 공장 등이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일제강점기와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농촌지역 중소도시에 지어졌던 양곡창고와 공장건물들은 이농현상과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빈 상태로 오래 방치돼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심공동화 현상의 상징처럼 방치됐던 이들 건물들은 최근 도심재생사업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지역의 문화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남 담양의 담빛예술창고는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고 최근 개점한 순천의 청춘창고는 청년창업의 요람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주의 옛 잠사(누에고치 가공 공장)는 현재 새단장 작업이 한창이고, 지난해 목포의 옛 조선내화 공장에 펼쳐진 공연과 그림전시회 등은 지역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지역의 애물단지에서 문화예술요람으로 다시 태어난 현장을 둘러보았다.
양곡창고에 예술을 입힌 담빛예술창고
16일 오후 4시 전남 담양군·읍 담빛예술창고. 평일 오후인데도 1층 문예카페에는 오가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대형 대나무파이프오르간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자리 잡은 손님들은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남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2015년 9월 국내 최초로 열린 세계대나무박람회에 맞춰 개관한 담빛예술창고는 1960대에 지어진 양곡보관 시설로 옛 이름은 ‘남송창고’다. 담양의 넓은 들판에서 수확한 벼를 보관하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창고는 90년대 후반 추곡수매제도 폐지와 함께 문을 닫은 뒤 10여년간 방치됐었다. 낡고 오래된 시설로 철거위기에 있던 양곡창고에 예술을 입힌 건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으로 선정되면서부터.
대지 4,532㎡에 창고 2동 660㎡ 규모인 남송창고는 사업비 12억원이 투입돼 문화복합전시관, 체험실, 문예카페 등으로 탈바꿈했다. ‘ㄱ’형 건물 2동은 2층에 다리형식으로 연결됐는데 1동은 1층 커피숍과 다락형태의 2층 문화체험공간으로 꾸며졌고, 다른 1동은 미술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예카페에 설치된 대나무파이프오르간은 700여개의 대나무 파이프를 이용해 높이 4m, 폭 2.6m 크기로 제작돼 10가지 악기소리를 낸다. 전국의 하나뿐인 오르간은 대나무 고장인 담양의 상징물로 주말과 일요일, 공휴일에 하루 한 차례씩 25분간 연주되고 특별 공연도 펼친다.
17일 오후 6~7시에는 ‘박은혜 대나무파이프오르간 연주와 바하 합창단’ 공연이 있다. 오르가니스트 박씨와 서울 바하 합창단이 참여해 바흐와 헨델이 작곡한 교회음악을 선사한다. 박씨는 오르간 독주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를 연주할 예정이다.
문예카페 옆 전시공간에서는 시인이자 목사인 임의진 작가의 ‘예술가의 집’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갤러리는 한 달을 주기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작가들에게 대관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다.
담빛창고가 인기를 끄는 것은 낡고 오래된 건축물의 대변신이 주는 반가움과 신선하고 참신한 전시와 연주회, 주변환경과의 어울림 때문이다. 카페는 2층 높이의 외벽 양쪽을 벽돌을 털어내고 대형유리창을 설치해 시원한 느낌을 주고, 건물 주변에는 조각공원과 포석정을 닮은 실개천 등을 설치해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담양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담빛창고는 개관 1년 만에 방문객 15만명을 돌파하는 등 담양의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5년 묵은 농협창고에 ‘청춘창고’
순천시 조곡동 옛 순천농협 조곡지점 양곡창고에는 청년창업 1호점인 ‘청춘창고’가 지난 8일 문을 열었다. 이 창고는 1961년 건립돼 50년 이상 양곡 보관에 사용됐으나 쌀소비량 감소 등으로 활용도가 떨어지자 청년창업 공간이자 청년문화 교류의 장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청춘창고는 점포 22개와 소규모 공연장, 여행자 모임 등이 가능한 만남의 공간 등 먹거리와 살거리, 문화가 있는 청년복합공간이다. 청년상인들만의 특색을 갖추어 스테이크, 수제버거, 갈대철판아이스크림, 파스타 등 먹거리 부스와 인테리어 소품, 장남감과 3D프린팅 등 공예부스로 꾸며졌다. 특히 청년들 스스로가 협의체를 구성해 자유롭게 운영할 예정인데 2년간 자신만의 사업분야를 개척해 졸업하는 창업보육기능을 부여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한다는 전략이어서 청년창업의 요람으로 기대된다.
이 곳은 연간 12만명의 내일러(청년철도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순천역 부근인 데다 게스트하우스 밀집지역이어서 전국의 청춘들이 만나 즐기는 공간이 될 전망이다.
옛 나주잠사 ‘나비센터’로 새단장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자리 잡아 전남 방직산업의 상징인 잠사 옛 나주잠사가 문화예술창작발전소로 새롭게 단장된다. 개·보수공사가 한창인 공장 건물은 70년대 지어져 지역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부흥했지만 90년대 초반 폐업한 후 방치돼 현재는 근대역사문화자산으로 남았다.
가칭 ‘나비(羅飛·나주아트비전)센터’조성 사업은 나주시 금성동 옛 나주잠사공장 터와 건물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단장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 2014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사업비 49억원을 들여 공장 대지 3,863㎡에 있는 건물 6동과 굴뚝 1동(면적 1,881㎡)을 고쳐 지역의 문화예술창작발전소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이곳에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와 교육공간 ▦시민사랑방 ▦예술체험 및 창작공간 등이 들어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이 운영될 전망이다.
목포 폐 공장선 ‘셉템버 페스트’ 열려
전남 목포시 온금동 옛 조선내화 폐공장에서는 지난해 9월 ‘셉템버 페스트’가 열려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에서 따온 가을축제에서는 영화상영과 클럽파티, 뮤지컬 공연 등이 펼쳐져 폐산업시설도 문화공간으로 재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해 줬다. 특히 ‘다순구미 이야기’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의 그림일기와 예술인들의 동네풍경작품 전시, 주민일상사 기록 등으로 꾸며져 동네 문화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했다.
조선내화 공장은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을 등지고 넓은 바다를 눈앞에 두고 있어 문화재생사업 가능성이 높은 곳이지만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광양 문화용광로 사업 추진
광양시도 광양읍 인서리 산업시설에 대한 문화재생사업에 나섰다.
시가 추진 중인 ‘광양문화용광로 사업’은 올해 사업비 36억원을 들여 대지 3,300㎡, 건축면적 1,250㎡ 규모인 폐산업시설을 수용해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시민들을 위한 창작 및 체험공간, 공동미술과 디자인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 카페 등 편의시설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전남을 비롯한 전국 중소도시에서 본래 기능을 상실해 방치되고 있는 대형 창고와 산업시설을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사업이 한창이다. 이농과 도심공동화 현상 등으로 활동이 정지된 공간에 문화예술의 옷을 입혀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지역의 문화발전소 역할을 담당하게 될 이들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주민 간 원활한 소통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다.
담빛예술창고 장현우 총괄기획감독은 “담빛창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의 지속적인 운영 의지와 주민들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주어진 공간활용을 위한 신선하고 내실있는 기획전시와 공연, 관방제림 등 친환경적인 주변 환경 등이 어우러져 지역의 문화예술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주·담양=글 사진 김종구기자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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