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피살 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 그를 암살한 용의자 2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5일 말레이시아 경찰은 도피한 용의자들이 아직 국내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하고 추적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정확한 신원은 안개 속에 가려진 상태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살해한 여성 용의자 2명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말레이시아 전역에서 추적 중이라고 말레이 메일이 이날 보도했다. 경찰은 또한 쿠알라룸푸르 공항 안팎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 후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위해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 중 한 명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말레이 메일이 공개한 공항 외부의 CCTV 사진에는 ‘LOL’(Laugh Out Laughㆍ크게 웃는다는 뜻의 약어)이라고 적힌 흰색 긴소매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포착됐다. 김정남 암살범으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13일 오전 9시경 김정남을 공항 제2청사 메인터미널에서 독극물로 쓰러뜨린 후 청바지와 푸른색 상의를 입은 다른 용의자와 만나기 직전인 9시 26분쯤 택시를 타고 달아나기 앞서 화면에 잡힌 것으로 전해진다. 아시아인의 외모를 한 용의자는 단발머리에 짙은 립스틱 화장을 했으며 짧은 치마를 입고 성인 손바닥만한 크기의 크로스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여행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용의자들의 구체적인 신원은 오리무중인 상태이나 이들이 북한인이 아닌 베트남인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홍콩 일간 동방일보(東方日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경찰은 두 용의자를 태운 택시 기사를 체포해 이들과의 관계를 확인 중이다. 용의자들은 택시 기사에게 스스로 “우리는 베트남인”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텔레그래프도 익명의 현지 경찰을 인용해 “CCTV 분석과 목격자 진술을 종합할 때 용의자들이 베트남 여성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전했다. 다만 도주 중인 이들이 직접 신원 정보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단순한 위장술이었을 확률도 높다.
동방일보는 또한 현장에서 2명의 여성 공작원 외에도 남성 용의자 4명이 김정남 피살에 가담했다고 보도했다. 그 중 일부는 북한인으로 보였다고 말레이시아 경찰 고위 관계자는 밝혔다. 총 6명의 암살자들은 이후 호텔 등으로 흩어져 도주했으며 초반에 밝혀진 두 여성 용의자 중 1명은 15일 오전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체포된 여성의 나이는 29세, 국적은 베트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용의자들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교도(共同)통신은 15일 일본 정부 관계자가 “여성 용의자 2명에 대해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과거 국내외 언론에서도 북한 공작원들이 임무 수행 후 체포될 위기에 몰리면 기밀 보안을 위한 자결용 독극물을 품고 다닌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사실상 임무를 완수한 이들이 경찰에 붙잡혀 마지못해 배후를 실토할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작심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암살을 지령한 인물이 도피하는 이들을 붙잡아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ㆍ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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