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최지윤] '뺨 때리고 강제 키스하고….'
tvN 월화극 '내성적인 보스'의 강우일(윤박)은 비서 채지혜(한채아)에게 기습 키스하는 장면이 방송됐다. 채지혜는 당황하면서도 끝내 눈을 감고 키스를 받아 들였다. KBS2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는 나연실(조윤희)은 매달리는 홍기표(지승현)의 뺨을 때리며 "다신 나타나지 말라"고 분노했다.
두 장면은 한국 드라마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리셰다. 상대방이 원치 않았는데 기습ㆍ강제로 키스하는 게 사랑으로 그려진다. 뺨을 때리는 신 역시 마찬가지다. 폭력을 행사했는데도 오히려 데이트로 포장된다. 시청자들이 되레 "데이트 폭력을 미화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유다. SBS 주말극 '우리 갑순이'는 데이트 폭력 논란으로 방통심의위원회 소위원회 안건에 상정되기도 했다. 극중 허갑돌(송재림)이 헤어지자는 신갑순(김소은)을 벽에 밀치고 키스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방송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항, 제30조(양성평등) 2항에 따라 심의를 받은 결과 '문제없음'으로 결론 났지만 일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 도미니크 딘킨스가 만든 '가장 유명하고 과도하게 사용되는 한국드라마 장면들(Most Popular & Overused Kdrama)' 인포그래픽/사진=딘킨스 SNS
한드(한국드라마)의 이 불편한 클리셰는 외국인들에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영어강사 도미니크 딘킨스 씨는 페이스북에 한국에 살면서 느낀 다양한 문화를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해 올리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과도하게 사용되는 한국드라마 장면들(Most Popular & Overused Kdrama)'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딘킨스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과 장면 15개를 꼬집었다. 기습 키스부터 순간적인 손목잡기ㆍ모든 것을 소유한 재벌ㆍ가난한 여성의 부 획득 등이다. 열거한 네 개의 설정을 가지고 재벌 3세와 평범한 여자의 사랑을 주제로 드라마를 써도 될 정도다. 또 기억상실증ㆍ불치병ㆍ숨겨진 자식ㆍ호전되지 않는 가족관계ㆍ갑작스런 교통사고ㆍ등장인물 바꿔치기ㆍ미친 계모 등 막장 요소들도 지적했다. 과음ㆍ극적인 오열ㆍ숱한 공항장면ㆍ극적이면서도 슬픈 비 내리는 장면이 있었다.
이 외국인이 지적한 것들은 막장 코드로 볼 수 있다. 일일극과 주말극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자극적인 요소는 비난을 받지만 화제를 모으면서 높은 시청률로 연결된다. 욕하면서도 보는 시청자들의 심리다. MBC 주말극 '불어라 미풍아'와 SBS 일일극 '아임쏘리 강남구'는 기억상실에 교통사고, 시월드, 불륜 등 '막장 오브 막장'의 요소가 총집합 돼 있다. '불어라 미풍아'는 막장 논란 속에서도 시청률이 고공 행진 중이다. 49회는 22.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윤정주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드라마에서 남자가 강제키스 할 때 여자가 '안 된다'며 저항해도 '된다'는 상황으로 만들어 폭력을 정당하게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력을 희화화하는 드라마가 많다. 폭력을 가볍게 여기고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제작진들은 흔히 설정하는 드라마 속 요소들이 잘못된 인식을 고정,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최지윤 기자 plai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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