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학, 김영란법 핑계로
거마비 관행을 심사비로 반영
심사위원 5명에 최대 110만원
“논문 준비로 시간 모자란데
돈 마련하려 알바까지” 울상
서울 한 사립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김모(32)씨는 얼마 전 논문 최종 심사를 마쳤다. 시원한데 화가 난다. “논문 준비로도 시간이 모자란 판에 논문심사비가 올라 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했거든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죠.”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는 학교 규정상 최소 5명. 김씨는 비용을 줄이려고 1인당 30만원인 외부심사위원은 1명(최소 기준)만 위촉하고, 내부심사위원(1인당 10만원)으로 채웠지만 7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벌이가 없는 대학원생에겐 큰 돈이다.
일부 대학이 석ㆍ박사 논문심사비용을 슬그머니 올리고 있다. 인상 명분은 공교롭게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연결된다. 지난해 10월 교육부가 ‘논문심사와 관련된 학생이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논문심사 교수에게 식비나 교통비 등을 제공하는 것은 학생과 교수 모두 제제대상에 해당한다’는 Q&A 자료를 각 대학원에 전달하자, 일부 대학이 그간 관행으로 여겨지던 거마비(교통비) 등을 아예 논문심사비용에 얹으면서 값을 올린 것이다. 청탁을 뿌리뽑긴커녕 양성화하면서 학생들 부담만 늘어난 꼴이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됐던 그릇된 관행이 대학들의 꼼수로 되살아나 학생들은 울상이다.
10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숭실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박사학위 논문 외부위원 심사비를 20만원이나 올려 1인당 30만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내부위원은 동결(10만원)했다. 외부위원을 최소 1명, 최대 3명까지 위촉해야 한다는 관련 규정을 감안하면 학생들이 부담할 최대 비용은 110만원에 달한다. 학교 측은 “외부위원들 교통비와 식사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대는 논문심사비용을 석사학위(심사위원 3명)는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박사학위(심사위원 5명)는 3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일괄 인상안을 검토했다. 숭실대와 같은 이유를 대며 외부위원뿐 아니라 내부위원 몫도 올리려 했지만, 학생들 반대에 부딪혀 최근 인상을 포기했다.
대학원생 정모(28)씨는 “교육부 지침은 아예 거마비를 학생이 부담하지 말란 소린데, 학교는 논문심사비에 포함시켜 학생들에게 부담하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혜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교수들은 이미 등록금으로 논문 지도와 심사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혹시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대학이 책임져야지 학생들에게 부담하게 하는 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학생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논문심사비를 받지 않는 대학도 있다. 최근 한양대는 2017년 1학기부터 논문심사비를 학생들에게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논문심사비가 부담된다는 학생들의 고충을 학교가 전격 받아들인 것이다. 연세대도 같은 이유로 논문심사비를 교수들에게 교비로 주고 있고, 중앙대는 2009년부터 학생들에게 논문심사비를 받지 않고 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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