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스크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연극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은 영화와 드라마로 입지를 넓히고,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통해 대중을 만났던 배우들은 연극과 뮤지컬로 진출해 관객과 호흡한다.
2시간 가량 배우 스스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연극은 감독의 컷과 편집을 통해 장면이 연출되는 영화ㆍ드라마와 연기 호흡부터가 다르다. 최근 연극 무대에 오른 영화배우 6인에 대한 평가를 평론가, 기획자, 연출가 등 연극계 관계자 6명으로부터 들었다. 발성과 연기력, 캐릭터 해석, 무대장악력, 인지도에 의한 공연 흥행 등 종합 평가였다.
2012년 ‘헤다 가블러’로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이혜영(55)은 연극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다. A 관계자는 “연극은 연속성이다. 공간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연기력, 무대장악력이 필요한데 이혜영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에 대한 호평을 나는 듣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B 관계자는 “강한 캐릭터를 지닌 배우를 연극계에서는 찾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혜영은 캐릭터를 압도적으로 구축하고, 공연 흥행에도 성공했다”고 평했다. 그만의 강렬한 캐릭터를 단점으로 꼽은 경우도 있었다. D 관계자는 “’헤다 가블러’는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갈매기’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해 좋다, 나쁘다 말하기 애매하다”고 말했다. 이혜영은 24일부터 ‘메디아’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충무로에서 실력파 연기자로 인정받는 문소리(43)는 젊은 배우들에 비해 연륜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의견도 있었다. C 관계자는 “무대 연기 경험이 많을수록 캐릭터 창조능력이 강화된다”며 “문소리는 이혜영보다도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어 기대되는 배우”라고 호평했다. 반면 E 관계자는 “’광부화가들’에서 문소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펼쳤지만 캐릭터 해석이 성의 없어 보였다”고 평했다. D 관계자는 “‘빛의 제국’에서도 그다지 좋은 평가는 못 받았다”며 “무대에 꾸준히 섰던 배우가 아닌 탓에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대중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문소리는 ‘광부화가들’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빛의 제국’으로 무대에 다시 섰다.
최근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됐던 문근영(30)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컸다. C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고 동년배 배우들 중에 자신의 캐릭터를 지녔다고 평가되지만, 발성이나 무대장악력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B 관계자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공연 전 표가 매진돼 흥행했지만 문근영을 보러 들어갔다 실망하고 나온 관객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B관계자는 “연극계 평가가 좋지는 않지만 연출 입장에서도 그걸 모르면서 함께 작품을 한 건 아닐 것”이라며 “문근영만의 장점이 발휘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5년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에 이어 최근 배우 이순재 데뷔 60주년 기념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연극에도 도전한 유연석(33)은 드라마의 흥행만큼 관객들 사랑을 받는다는 평이었다. E 관계자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법을 알고 관객들도 좋아하는 배우”라며 “무대에서 훈련된 배우들에 비해 에너지 크기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이를 상쇄할 만한 매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향후 작품 선정에 따라 연극배우로서의 입지도 강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C 관계자는 “무대는 방송과 달리 배우 스스로 눈에 띌 만한 연기력을 선보여야 하는데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유연석은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다”면서도 “기념공연이라는 작품 특성 탓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햄릿 더 플레이’에 출연한 김강우(39)의 연기력은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연극배우로서의 행보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B 관계자는 “연극계 평은 나쁘지 않다. 다만 스크린에서 넘어 온 배우의 인지도에 비해서는 작품 흥행이 아주 잘 된 편은 아니다”고 말했다. C 관계자는 “본인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는 점은 양날의 검”이라며 “스크린에서의 강렬한 연기가 무대에서도 반복돼 차기작 기대치는 중간 정도”라고 말했다.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쳐 온 류승범(37)의 연극 복귀작 ‘남자충동’(16일 초연)은 역할을 잘 만나 기대가 된다는 평이었다. B 관계자는 “연극은 영화와 호흡이 다른 만큼 사실은 좀 우려되는 배우”라면서도 “연극 복귀작이 ‘남자충동’이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말했다. C 관계자는 “’남자충동’ 캐스팅의 가장 큰 이유도 연기에 있어 저돌적이고 거침 없는 점이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라며 “무대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조광화 연출이 지도해 줄 것이라 믿어 무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스크린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관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공연계 관계자는 “연극 연기에 갈증이 있는 배우들이 무대로 오기 때문에 스스로도 검증되지 않은 채로 연극에 도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긍정 평가했다. 김명화 연극평론가는 “무대에서 보다 단단한 연기력이 요구되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역할과 연출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도움말 주신 분들
김명화 평론가, 김아형 서울예술단 홍보팀장, 김태형 연출가,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조형준 안산문화재단 PD,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수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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