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들의 자산을 이용해 기업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선량한 주주로서의 행동’을 유도하고자 마련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한 지 두 달째 유명무실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부터 참여를 주저하고 있어서다. 급기야 금융당국이 ‘인센티브’까지 약속하며 동참을 독려하고 나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3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공동으로 간담회를 갖고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예정기관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도록 관련 기관들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가령 산업은행이나 연기금 등이 위탁운용사를 선정할 때 가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 “스튜어드십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삼성ㆍ미래에셋자산운용 등 8개사 대표를 동석시키기도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이 ‘집사(steward)’처럼 고객의 자산을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기관투자자는 고객 자산을 맡은 수탁자이자 투자 기업의 주주인 만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후 현재 10여개 국이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대부분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수익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주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해 기업의 ‘일탈’을 방조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부적절한 지원 의혹도 하나의 사례다.
이런 반성으로 금융당국의 지원 속에 작년 12월19일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인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 공표됐지만 기업들의 “경영간섭” 반발 등으로 아직 이에 가입한 국내 기관투자자는 전무한 실정이다.
당국이 이날 8개 참여예정기관을 공개하긴 했지만, 여전히 실제 시행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 최대 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이 나서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보건복지부의 결정 사항”이라고 책임을 미루고 있고, 복지부는 “파급효과가 커 내부 검토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민연금보다 앞서 나섰다가 대기업들에게 미운털이 박힐까 눈치를 보는 자산운용사들도 그다지 적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시행이 목표지만 어떤 주식에 어느 정도 의결권을 행사할 지 검토할 게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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