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스타일로 비판받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교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통령 권력의 한계와 냉정한 국제정치 현실을 깨달으면서 즉흥과 파격에서 벗어나 우방을 중시하는 미국의 전통적 외교술로 회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끝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미ㆍ일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달라진 외교관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다. 그는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을 감행하자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자청해 북한을 강도 높게 규탄했다. 신속한 대처를 통해 동맹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일본 달래기에 나선 것. 트럼프는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공동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며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은 우선 순위가 매우 매우 높다(very very high)”고 강조했다.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미일 상호방위조약을 “불공정하다”고 공격하고, 심지어 미국의 국방비 부담을 줄이려 한국 주둔 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극단적 태도에서 한결 누그러진 셈이다.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은 1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례적인 공동성명은 백악관이 외교정책의 현실을 감안해 날린 첫번째 ‘잽(jab)’”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은 물론, 취임 이후에도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몰아 붙이며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선 직후에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통화해 중국 지도부가 금기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듯한 입장마저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첫 통화를 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등 신중 모드로 돌아선 상태다.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반(反)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중단시킨 법원 판결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무소불위 권력자가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면서 외교정책에서도 동맹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온건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다. 미 조지타운대 로스쿨 피터 에델만 교수는 “법원 결정은 어떤 대통령도 권력의 한계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FT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절제된 발언으로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을 따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외교노선으로 복귀했는지 단정짓기는 아직 이르다. 그는 이번 주에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13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15일)와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반이민 정책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캐나다와 친(親) 이스라엘 행보에 기운 트럼프를 두둔하는 이스라엘. 상반된 입장의 두 정상과 만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술이 정말로 변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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