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수록 의혹의 도시는 쌓여갔다. 왜 이곳은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에 자주 오르지 않았을까. 벨기에하면 동화 같은 브뤼헤, 트렌드세터의 심장을 터지게 하는 안트베르펜을 으뜸으로 추켜세운다. 버금이라 하기엔 영 억울한, 광명의 도시. 바로 겐트다.
겨울이라도 좋아…1차도 맥주, 2차도 맥주
아직 시장기가 찾아오지 않은 오후 6시 무렵, 여행지에서 만난 겐트 토박이가 ‘간단히’ 식전 한잔을 청했다. 옷깃을 여미며 들어간 건 겐트의 대동맥인 레이에(leie) 강 앞의 로컬 바(bar)였다. 이미 걸쭉하게 한잔하신 분들의 높은 목청에, 실내는 오후 10시쯤 되어 보였다.
자리에 앉으니 백과사전급 메뉴판이 놓였다. 이건 족보 없는 벨기에식 ‘김밥천국’인가? 아니, 맥주 메뉴판이다. 겐트는 공식적으로 250여 종의 맥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언제나 공식은 비공식보다 적은 법. 맥주별로 용량과 알코올 지수 등을 해부 수준으로 소개한 메뉴판을 독해하느라 주문 받으러 온 종업원을 두 번이나 돌려보냈다. 난독증에 걸리기 전 주문한 건 겐트 표 어거스틴(Augustijn)과 수도원 산 시메이(chimay)다. 맥주 문외한에게도 느껴지는 맛의 차이로 동공이 커졌다. 맥주 타입에 딱 맞는 컵의 등장은 호들갑으로도 이어졌다.
입에 거품을 바르기도 전 2차를 갔다. 긴 테이블에 다닥다닥 술 애호가가 살을 맞붙이는, 앉자마자 옆 사람과 말을 섞게 하는 구조다. 브뤼헤에서도 물론 바의 유혹엔 쉽게 빠진다. 대신 겐트는 확실히 낮은 평균연령으로 맞선다. 겐트의 인구 중 약 26%가 학생이고, 그 혈기가 바를 서성인다. 바를 나서면 적당한 추위와 야경의 로맨스가 휘감겼다. 한 도시와 ‘썸타는’ 상상이 일렁였다.
레고 주택 속 아이쇼핑의 쾌감
한국에서도 점점 번져가는 협소 주택은 벨기에의 숙명이었다. 경상도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엔 명석하게 공간을 활용하는 두뇌가 발달했다. 층별로 단독 룸이자 집이 되는 쉐어하우스 형태도 흔하다. 가령 5층짜리 건물에 1층은 공용 주방과 거실이 있고 층별로 입주자가 들어서는 방식이다. 방문이 곧 대문인 셈이다. 이런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겐트의 숍에도 적용된다.
작은 평수에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완벽하게 전시하느냐의 경기를 벌인다면, 이곳이 1등 근처엔 갈 거다. 레이에강 양편으로 촘촘한 고딕 길드식 주택이 겐트를 대표하는 풍경이라면, 중세의 성(城)인 그라벤스틴(Gravensteen) 주변 구석구석은 겐트의 숨은 보석이다. 디스플레이에 전력투구를 던지는 숍이 포진했다. 아이쇼핑은 적극 권장사항이다. 창문 앞은 구경 삼매경인 눈들이 매달려 있고, 장식된 물건은 하나를 빼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다. 이 훌륭한 디스플레이에 함정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올 때쯤 내가 왜 이걸 샀는지를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만큼 마음을 훔친다.
중세 랜드마크의 겉과 속 맛보기
레이에 강을 등지고 성 미카엘(Sint-Michielskerk) 다리에 서면, 겐트의 3대 랜드마크가 좁은 시야각의 사진에도 들어온다. 도미노다. 성 니콜라스 교회(Sint-Niklaaskerk)를 넘으면 벨 포트(Het Belfort), 그 뒤는 성 바프 대성당(Sint-Baafskathedraal)이다. 겐트라는 대지가 하늘에 맞닿으려는 고결한 사진의 명당이다.
겐트의 랜드마크 중 성 바프 대성당 별실엔 반 아이크 형제가 산다. 아트 부문에서도 겐트는 뒤지지 않는다. 브뤼셀의 피터 브뤼겔, 브뤼헤의 한스 멤링, 안트베르펜의 루벤스와 더불어 겐트는 반 아이크 형제를 선두에 내세운다. 고작 257km만 주행하면 브뤼셀-안트베르펜-브뤼헤-겐트-브뤼셀의 아트 트레일 여행도 가능하다. 대성당 별실로 들어서니, ‘어린 양에 대한 경배(The Adoration of the Mystic Lamb)’가 뒷걸음질치게 했다. 얀 반 아이크가 후세에 남긴 15세기 작품이다. 걸작다운 솜씨였다. 그 멀티 패널에 녹아 든 디테일은 예상했던 감상 시간을 초과하고 말았다.
반면, 벨 포트(Het Belfort)는 겐트를 고공 비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종탑은 벨기에에서 가장 높은 91m다. 고맙게도 엘리베이터로 수직 상승하니, 레고가 현실화된 마을 풍경이 뚜벅 걸어왔다. 블록형 지붕을 가진 벽돌집, 구석구석 꾸물대는 트램의 풍경 사이로 사람들이 깔깔대는 앞니까지 보일 정도로 일품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일이,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세 시절 파리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도시란 명성은 사라졌어도, 그 아름다움의 명성은 건재하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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