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택 소외 비정규직, 전체의 60%
비정규직 가입률 10년 전과 비교
고용보험·건강보험 찔끔 오르고
국민연금은 오히려 1.9%P 하락
정부의 ‘두루누리 보험사업’은
신규 가입 비중 32% 효과 미미
경기 남부의 한 비닐공장에서 일하는 박남철(52ㆍ가명)씨는 하루 12시간(식사 및 휴게시간 1시간 포함, 토요일은 8시간)씩 주 6일간 일하며 한 달에 180만원을 번다.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라 한 푼이 아까운 그는 직장에서 4대 보험 가입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동료는 총 6명인데 그 중 1명도 박씨처럼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유령직원’이다. 박씨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인데 보험료까지 내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한 달에 150만원씩 버는 강금원(여ㆍ47)씨는 고용주가 매달 20여만원에 달하는 4대 보험료 부담을 꺼려 가입하지 못했다. 건강보험만 직장에 다니는 딸에게 피부양자로 얹혀 있다. 당연히 노후 준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사회보험의 그물망이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약자들에게 점점 더 느슨해지고 있다. 법적으로 4대 보험 가입이 보장되지 않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데다, 고용주는 물론 그들 스스로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가입을 꺼린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유로 4대 보험 직장 가입 혜택에서 배제된 비정규직이 10명 중 6명 가량이다. 정부가 그물망을 더 촘촘히 하겠다며 도입한 제도 역시 엉뚱한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며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4대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1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은 원칙적으로 의무가입을 해야 하고, 근로자들의 보험료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직장가입자 기준, 지역가입자로 개별 가입은 제외)은 국민연금 36.3%, 고용보험 42.3%, 건강보험 44.8%에 불과하다. 2006년 같은 조사와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되레 1.9%포인트 떨어졌고 고용보험은 6.0%포인트, 건강보험은 4.8%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정규직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국민연금 82.9%, 고용보험 75.1%, 건강보험 86.2%다. 10년 전보다 6.8~10.4%포인트 올랐다. 산재보험은 고용주가 보험료를 100% 부담하고 사업장 단위 가입이라 비교에서 제외됐다.
이렇게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은 1차적인 원인은 초단시간 근로자, 특수고용노동자(보험 외판원, 학습지 교사) 등 직장 의무가입 대상에서 법적으로 예외가 인정된 이들이 상당수라는 점이다. 지난해 7개월 정도 한 종합편성채널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일했던 한성준(가명ㆍ26)씨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서 작성도 못했다. 4대 보험도 당연히 가입하지 못했다. 방송사 관계자들의 지휘를 받으면서 일을 하지만 근로자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씨는 “회사는 일하는 와중에 다쳐서 치료를 받게 되면 병원비는 정산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정작 촬영 중 2도 화상을 입은 동료는 비용청구를 하지 못했다”며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으로 회사에 요구하며 말을 꺼내는 게 쉽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뿐이 아니다. 박씨처럼 사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도 낮은 임금 때문에 스스로 가입을 거부하거나 강씨처럼 고용주가 기피하는 이들 역시 전체 근로자의 20% 내외에 달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고용주나 근로자의 뜻으로 고용 신고가 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각지대가 국민연금 19.3%, 고용보험 21.0%, 건강보험 16.2%로 추정된다.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고착화된 저임금 구조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도록 떠밀린 이들이다. 고용주의 경우에도 의무가입 조항을 어기더라도 보험별로 각 50만~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정도의 처분만 받는다.
정부는 이러한 저임금 근로자와 영세 사업자들을 위해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월평균 보수 140만원 미만으로 일하는 근로자에게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를 최대 60%까지 지원하는 ‘두루누리 보험사업’을 2012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작년 8월 기준 두루누리 가입자 중 기존 사회보험 가입자 비중은 67.3%, 신규 가입자 비중은 32.7%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금의 70% 가까운 예산이 기존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을 위해 사용돼 정작 지원이 필요한 신규 가입자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입법조사처)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기업 부담이 큰 건강보험료 지원은 두루누리 사업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실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사회보험 사각지대 지원에 대한 정책 제안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4대 보험료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대책일 뿐 근본적 대책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도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사회보험료를 무작정 지원하는 제도는 사회보험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오해를 강화할 뿐”이라며 “두루누리 사업만 봐도 사각지대 해소 효과나 고용증대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위원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처럼 보험금을 낼 여력이 없고 회피하려는 계층에게는 맞춤형 공공부조를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며 “사회보험에 가입하고 싶지만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시간제일자리 등 사각지대에는 제도적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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