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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튀김젓가락

입력
2017.02.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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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돌이 세탁기를 새로 샀다. 드럼세탁기에 비하자면 예쁘지도 않고 투박하지만 뭔가 시원시원하게 빨래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쳤다. 키 작은 나는 빨래를 꺼낼 때마다 통돌이 바닥까지 손이 수월하게 닿지 않아 늘 읍읍! 기합을 넣으며 팔을 힘차게 뻗고 손가락 끝이 바들바들 떨리도록 힘을 주어야 했다. 그래도 꺼내지 못하는 양말짝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두고 다음 빨래를 돌릴 때까지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양말은 몇 달이 지나도록 짝 없는 상태로 굴러다닌 적도 있다. 빨래를 꺼내다가 하마터면 세탁기 안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은 사람인데도 평생을 통돌이만 써왔으니 무언가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아이고야, 니는 그라믄 진작 얘길 하지. 내가 그걸 갖다 줬을 긴데.” 나는 눈을 반짝였다. 역시 고수들의 비법이 있구나! 하지만 엄마가 갖다 준 건 튀김젓가락이었다. 나는 이후로 우아하게 세탁기에서 기다란 튀김젓가락으로 양말을 꺼내는 여자가 되었다. 물론 빨래를 다 꺼내고 난 뒤 튀김젓가락을 잘 숨겨둔다. 세탁실에서 튀김젓가락이 발견되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좀 우스우니까 말이다. 키가 큰 친구는 젓가락의 용도를 알고 난 뒤 말을 더듬었다. “아니… 세탁기에서 빨래를 못 꺼낸단 얘기도 처음 들었지만… 튀김젓가락은 정말… 그건 정말… 세탁망을 쓰던가 스텝퍼를 하나 사든가… 무슨 젓가락을…” 세탁망도 스펩퍼도 좋은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나는 키가 큰 친구가 마냥 고까워서 튀김젓가락 편을 들었다. “써보면 놀랄 걸. 진짜 편하거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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