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ㆍ英 등서 이름 알리고 역수입
2집에 88만원 세대의 아픔 담아
“한국에서 전자음악을 합니다.” 사내는 2012년 9월 미국 유명 음악 웹진 피치포크미디어 등 해외 미디어와 음악 관련 유명 블로거에 200개의 메일을 보냈다. 집에서 만든 노래 ‘컬러스’를 알리기 위해서다. 일괄적으로 뿌린 단체 메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1주일 동안 200개의 메일을 모두 다르게 써 보냈다.
5개월이 지나서야 반응이 왔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이 2013년 2월 ‘컬러스’를 ‘월간 해외 베스트 음악’으로 선정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 음악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 말고 한국에 이런 전자 음악도 있다’며 ‘컬러스’가 입소문을 탔다.
이를 계기로 2013년 4월 발표한 후속 곡 ‘타임라인스’가 미국 음악 사이트 ‘인디셔플’에서 반나절 동안 음원 차트 1위를 했다. 비슷한 시기 새 앨범을 낸 세계적인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를 제치고 이변이 연출되자, 영국에 본사를 둔 유명 음반 유통사와 ‘전자음악 강국’인 독일의 한 음반 제작사 등에서 계약 제안이 들어왔다. 마일로와 지로 구성된 전자음악 듀오 프롬 디 에어 포트(프롬 디)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 2집 ‘더 보이 후 점프드’를 낸 뒤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아 “다프트 펑크를 앞선 차트 순위 사진을 가보처럼 품고 산다”고 웃으며 관련 사진을 보여줬다.
프롬 디는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뒤 국내에 뒤늦게 소개된 특이한 사례다. 가수 이승열 등이 속한 기획사 플럭서스뮤직과 계약을 맺은 것도 미국 차트에서 1위를 하고 난 뒤였다. 마일로는 “일부러 해외 시장을 먼저 두드렸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주목을 받아야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2015년 낸 1집 ‘유 쿠드 이매진’까지 모든 곡을 영어로 썼다. 마일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주류 음악 시장은 아이돌 댄스 음악에 잠식된 지 오래다. 전자음악도 클럽에서 춤추기 좋은 EDM(전자댄스음악)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 그 외의 장르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다양성이 실종된 국내 음악 시장에서 인디 음악을 하는 이들은 절박할 수 밖에 없다. 밴드 연주를 기반으로 전자음악을 하는 ‘프롬 디’가 그간 ‘밖’으로 돌아야 했던 이유다.
이들은 2015년 일본의 서머소닉과 미국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등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 잇따라 초대 받으며 새 앨범을 계획했다. 주제는 ‘청년의 성장통’으로 잡았다. 두 청년은 수록 곡 ‘나이트 앤드 데이’에서 ‘고용 절벽’에 지친 청년을 얘기하고, 또 다른 노래 ‘고 오어 다이’에선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88만원 세대’의 발버둥을 ‘살인 마라톤’에 비유해 서늘함을 준다.
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했다. 운 좋게 2집까지 냈지만, 팀 활동 만으로 ‘밥벌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도 며칠 밤을 새워가며 ‘한공주’ ‘시라노: 연애 조작단’ 등 영화 OST 작업(마일로)을 하고, 작곡 레슨(지) 등을 따로 하며 생계를 꾸린다.
그룹 카라 출신 박규리는 프롬 디 음악의 신선함에 반해 ‘나이트 앤드 데이’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마일로는 “친하기도 하지만 박규리가 새로운 음악 작업에 관심이 많다”며 협업을 하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프롬 디는 4월14일 홍익대 인근 클럽 프리버드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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