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교수, 한국경제 25년 진단
“외환위기 후 소득ㆍ고용 없는 성장
정부가 분배구조 제대로 못 만들어
기업만 부자 되는 기현상 나타나”
“한국 경제는 지난 25년간 ‘나라가 잘되면 나도 잘 산다’는 국민의 믿음을 배신한 성장을 했다.”
국내 대표적 진보 경제학자로 꼽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1990년 이후 25년여의 한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때문에 경제성장의 결과, 국민이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라 기업만 부자가 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장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최근 조기대선 정국을 염두에 둔 듯,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목적을 상실한 기존의 경제 체제를 연장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9일 서울 서강대에서 열린 ‘2017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전체회의의 주제발표자로 나서 이 같이 밝혔다.
장 교수의 ‘국민은 어떤 한국경제를 원하고 있는가?: 좌표와 지향점’ 논문에 따르면, 1990~2015년 사이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누적성장률은 249.0%에 달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평균 가계소득의 누적증가율은 90.5%로 경제성장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일자리의 누적 증가율은 43.4%에 불과했다. 경제가 성장한 만큼 가계살림이 나아지지 않은 건 물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아 결국 ‘소득ㆍ고용 없는 성장’을 해왔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경제성장과 가계소득 증가 간 괴리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두드러졌다. 1990~1997년 누적 경제성장률(70.7%)과 가계소득 누적 증가율(63.2%)은 격차가 크지 않지만 외환위기 이후인 1997~2015년 사이 가계소득 증가율(68.4%)은 경제성장률(104.4%)에 크게 못 미친다. 외환위기 이후엔 계층별 양극화도 훨씬 심해졌다. 1998~2015년 사이 전체 가구 가운데 소득 최상위계층인 10분위 가계의 소득 증가율(26.5%)이 가장 높았던 반면, 최하위 계층인 1분위의 소득 증가율(-2.9%)은 오히려 뒷걸음쳐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저소득층은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완전히 배제된 셈이다.
한국의 가계소득과 경제성장 간 괴리 정도는 주요국 가운데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2000~2015년 사이 32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2개국은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반면, 한국은 이 기간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58%에 불과해 32개 나라 중 25위에 그쳤다.
대신 경제성장의 과실은 대부분 기업에 흘러 들었다. 국민총소득(GNI) 가운데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71.6%에서 2015년 62.0%까지 급락한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17.0%에서 24.6%로 급증했다. “정부가 제대로 된 분배구조를 만들지 못한 결과”라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해결방안은 없을까. 장 교수는 “이념적 좌표가 달라도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 부자가 되는 한국경제의 현실이 정의롭지 않다는 결론에는 동의할 것”이라며 “국민을 잘 살게 하는 목적을 상실하게 만든 기존의 체제를 연장하는 선택을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조연설에 나선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은 “소득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중소기업 근로자의 낮은 생산성과 임금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가오는 대선에선 대다수 국민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어떤 제도적 처방을 내릴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