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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밀양은 지지 않았다

입력
2017.02.09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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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1일, 긴박했던 밀양의 하루에 대한 기억을 꺼내본다. 송전탑 예정부지 농성장에서 주민과 시민, 수녀님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저항했지만 경찰 20개 중대와 한전직원이 동원된 행정대집행으로 모두 끌려 나왔다. 흙먼지 날리며 무너지는 움막에서 20여명이 실신하고 부상당했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북경남까지 보내기 위해 765kV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수급과 송전선로 용량 초과를 이유로 공사를 강행했지만, 결론적으로 신고리 3호기는 시험성적서 조작비리로 송전선이 아니라 발전소 자체가 문제였음이 드러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현재 발전설비 과잉으로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지난 2월 2일, 창원 지방법원은 송전탑 반대 시위에 나섰던 주민 1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60~70세가 넘은 주민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1년씩과 벌금 2백만 원을 선고 받았다. 변호인단은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었고, 송전탑이 얼마나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마을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왜 시민불복종이 불가피했는지에 대해 자료와 근거를 제시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실정법을 위반한 폭력’으로 규정되었다.

경찰의 무리한 입건과 기소남발 등 공권력이 행사한 폭력은 인정하지 않은 채, 주민들의 ‘시민 불복종’은 모두 폭력으로 인정되었다. 심지어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앉아있거나 공사 장비에 몸을 묶은 행위도 폭력이 되었다. 송전탑 때문에 이치우, 유한숙 어르신이 목숨을 끊었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정부도, 국회도, 법원도, 그 어떤 곳도 밀양의 고통을 들어주지 않았다. 주민들이 겪은 비통함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밀양 주민들은 스스로를 태워 주변을 밝히는 촛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밀양 송전탑 싸움은 일방통행이던 정부의 중앙집중식 전력정책에 균열을 냈다. 도시민들은 탈핵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을 만나면서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을, 경기도가 2030 전력자립 정책을 만든 배경에는 밀양 송전탑 투쟁이 있었다.

지난해 전기위원회는 신한울 3,4호기 원전사업 허가를 보류했다. 송전선로를 확보하지 않고 원전 건설을 추진했던 기존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신울진~신경기 765kV 송전선로 계획은 HVDC(초고압직류) 송전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마저도 진행될지 미지수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원전 건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번 계획에서만은 전력수급에 환경ㆍ안전ㆍ사회적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금 많이 힘들고 아플 밀양 어르신들께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뜯어고쳐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밀양이 있어 ‘전환’을 위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밀양 산골 속에서의 힘겨웠던 저항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확산되고 있다. 밀양송전탑투쟁 백서에 빽빽하게 기록된 밀양의 하루하루가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재판에 대한 상고를 준비하고, 송전탑 건설이 마을 공동체 파괴에 미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경북 청도, 횡성, 당진, 군산 주민들과 송전탑 주변지역의 재산과 건강 피해 조사를 청원하는 활동도 시작할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불복종’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멈추지 않은, 멈출 수 없는 밀양의 ‘불복종’을 기억하고 응원한다. 밀양은 지지 않았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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