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다양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부작용 심한 항암제를 쓰기보다 몸의 면역기능을 강화시켜 암을 이겨내도록 만드는 최신 면역치료 기술과도 일맥상통해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전남대 의대 연구진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과 비브리오균을 유전공학 기술로 개량해 암에 걸린 실험용 쥐에 주입한 결과 암 조직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9일자에 발표했다. 연구를 주도한 민정준 핵의학교실 교수는 “독특한 형태의 신개념 암 면역치료 기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독성을 100만배 약화시킨 살모넬라균을 비브리오균의 체내에 들어 있는 면역조절 물질(플라젤린)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전자를 재구성했다. 그리고 이를 대장암에 걸린 실험용 쥐 20마리에 주입하고 120일 동안 관찰했다. 그 결과 11마리에선 대장암은 물론 다른 조직으로 전이된 암까지 거의 제거됐고 이후 재발이나 추가 전이도 없었다. 나머지 9마리에선 암이 일정 크기 이상 자라지 않았다.
살모넬라균은 대개 정상 조직보다 암 조직을 더 좋아한다. 연구진의 현미경 관찰에 따르면 실험 쥐에 주입된 살모넬라균이 암 조직을 찾아가자 주변으로 면역세포가 몰려들었다. 살모넬라균이 플라젤린을 분비하며 신호를 보내자 면역세포들은 암 조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래 암 조직은 자신을 제거하러 온 면역세포를 포섭해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암이 퍼지면 면역체계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민 교수는 “살모넬라균이 내놓은 플라젤린이 암의 이 능력을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균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120여년 전부터 있었다. 1890년대 후반 미국의 한 의사가 세균에 감염된 뒤 암이 나은 환자를 발견하고 그 세균을 치료제로 만들어 썼다. 이후 항암제와 방사선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균 치료제’는 점점 잊혀졌다. 그러나 현대적 치료법 역시 암 정복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최근 과학자들이 세균 치료제로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핵균으로 방광암을 치료하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했고, 이 외에도 6종의 세균이 암 치료용으로 연구되고 있다. 민 교수는 “유전공학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세균을 만들어 암 치료를 시도한 연구는 처음”이라며 “대형 동물을 대상으로 추가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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