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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자본만 유리” VS “공포 마케팅일 뿐”…대선 앞두고 상법 개정안 ‘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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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자본만 유리” VS “공포 마케팅일 뿐”…대선 앞두고 상법 개정안 ‘대치’

입력
2017.0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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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위원 분리선출ㆍ집중투표제로

지배주주 사익추구 막는 게 핵심

與 “외국자본, 이사회 장악 우려”

野 “소액주주 이익 대변해야”반박

“집중투표제 먼저…효과 살펴야”

순차적 추가 개정 목소리도

기업 이사회가 총수 일가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상법 개정안이 정치권과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조기 대선을 앞두고 법안 처리의 마지막 장인 이달 임시국회에서 최우선 입법 과제로 경제 민주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을 꼽고 있다. 반면 재계와 여권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나친 대주주 및 기업 옥죄기로 외국계 투기자본에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무장해제’당할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계의 ‘공포 마케팅’을 경계한 뒤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점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놨다.

6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소액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지배 주주의 사익추구 등 전횡을 막고 경제 민주화를 이룩하자는 게 개정안 취지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도입이다. 지난 1999년 상법 개정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7~9명) 밑에 감사위원회(3명 이상)를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은 기업의 재무성과나 중장기 경영전략 등을 견제ㆍ감시한다. 그러나 일단 모든 이사를 선출한 후 이들 가운데 감사위원을 뽑는 구성 방식 탓에 감사위원회마저 총수일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선임 단계부터 다른 사내ㆍ외 이사와 분리하고, 이 때 대주주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주주 지분이 50%가 넘더라도 감사위원 의결권은 3% 밖에 행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 1표’의 원칙을 적용하는 대신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표)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 경우 지분 5%를 보유한 주주는 주총에서 이사 3명을 선임할 때 후보자 1명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15%(5%*3)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재계와 여권은 상법 개정안이 ‘경제 옥죄기’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두 제도가 동시에 도입되면 외국계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의 이사회 장악이 용이해져 국내 기업의 경영권이 ‘무장해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주주 A씨가 35%의 지분을 갖고 있고 특수 관계인 A-A씨가 2%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때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며 이들이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A씨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만큼 총 5%에 그치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3%씩 지분을 가진 외국계 펀드 다수가 연합하면 감사위원 3명 모두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선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들이 집중투표제까지 활용하면 총 7명으로 구성되는 이사회(사내이사 3명+사외이사 4명)의 과반수 이상을 자기 몫으로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외국 자본의 이사회 장악→배당 확대 등 단기적 이익추구→중장기 투자여력 감소→기업 경쟁력 악화’도식이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지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분이 0.1%에도 못 미치는 소액주주들이 단합을 통해 지분을 긁어 모아도 자신들이 원하는 감사위원(사외이사)이나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결국 입법 취지와 달리 외국계 펀드 등 기관투자자만 유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야권은 재계의 우려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시나리오를 근거로 한 ‘공포 마케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 동안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외국 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외국계 펀드가 공동 전선을 형성해 경영에 참여하려 할 경우엔 공동보유자로 간주돼 ‘5%룰’(주식대량보유보고제도)을 적용 받는 만큼 실제 경영 위협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연기금의 한 고위 관계자도 “국내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대다수는 시장 지수를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연기금이 많다”며 “이들이 적극적인 주주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현재 이사 임기가 같은 날 종료되지 않는 시차임기제를 시행하고 있어 외국 연기금이 이사회를 장악하려 할 경우 최소 2,3년은 걸릴 것이라는 점도 전문가들 지적이다.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순차적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가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여전히 거수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지배주주 견제를 위한 상법 개정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택식 강릉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계 주장처럼 주요 개정안이 한꺼번에 ‘폭탄’처럼 도입되면 경영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며 “집중투표제를 우선 도입한 후 그에 따른 효과를 살펴보며 추가 개정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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