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주한일본대사가 일시귀국한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간 갈등은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대사 부재’의 비정상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대사를 귀국시킨 후 당초 열흘안에 서울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기도의회의 독도 소녀상 추진 등이 돌출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현재로선 양국 갈등이 해소될 계기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대사 귀국 후 잇달아 독도영유권 관련 망언을 퍼붓고 양국 갈등을 자국내 지지율 증폭의 호재로 이용하면서 대통령 권한 정지상태인 우리 정부를 외교적으로 얕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한대사가 한 달 가까이 서울을 비우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2005년 독도 갈등 때 본국으로 돌아갔던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당시 주한대사는 모두 12일만에 귀임했다. 주한대사 공백 상황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일본 정부는 소녀상과 독도 갈등을 풀 적절한 기회를 잡지 못한 탓도 있지만 청와대가 비어있는 한국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제에 한일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6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나가미네 대사의 귀임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할 것”이라며 “귀임일은 아직 미정이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의 이번 발언은 나가미네 대사의 귀국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드러낸 것으로 주목된다. 일본 정부가 한일간 교착상태 지속이라는 부담을 감수하고 주한대사 공백 상태를 유지해 외교적 이득을 얻으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한일 갈등을 끌어가려는 주체는 다름아닌 아베 총리로 보인다. 최근 한일관계에서 강공을 이어가며 지지율이 치솟자 이에 고무된 총리실이 직접 주한대사의 ‘무기한 대기’지침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도쿄의 한 소식통은 “대사귀임과 관련해 총리가 직접 이슈를 몰아가고 있으며 외무성은 독자적인 갈등해결 계기를 만들기 힘든 분위기이다”고 말했다. ‘석간 후지’에 따르면 외무성이 지난달 16일 전후 주한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를 귀임시키려 했지만 아베 총리가 ‘무기한 대기’방침을 결단했다. 아베 총리가 “이쪽에서 먼저 움직일 필요는 없다”며 “(대사의 일본체류 기간이) 1년이나 반년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쓰시마(對馬) 사찰에서 도난당한 뒤 한국에 반입된 불상을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법원 판결이 최근 나오자 이같은 아베의 강경 대응 명분이 강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정부 리더십이 무너진 상황에서 마음껏 ‘한국 때리기’를 이어가도 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 교도(共同)통신은 6일 주한대사 귀임 시기를 3월 이후로 전망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진퇴 문제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이는 3월 중순까지는 한국이 양국간 문제 해결에 대처하는 것이 곤란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한동안 한일 관계가 출구를 찾기 어려운 일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주한대사의 귀임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전망이다. 오는 22일에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다케시마(竹島ㆍ일본이 주장하는 독도명칭)의 날’행사를 강행하고, 3월에는 독도를 일본영토로 명기한 학습지도요령이 나올 예정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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