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정부가 국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부패사범 사면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지만,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의 물결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부패를 뿌리뽑겠다는 시위대의 의지는 내각 퇴진 요구로 이어지면서 루마니아 정국은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 축출 이후 가장 거대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5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선 50만명 가량의 시민들이 운집해 소린 그란데아누 현 총리 내각의 퇴진을 요구했다. 시위대는 깃발을 흔들며 “총리를 비롯해 모든 장관은 즉각 사임하라”고 외쳤다. 시위에 참여한 20대 여성은 “그들은 부패했다.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고 말했고, 한 30대 남성은 “정직하지 않은 정치인들은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소리쳤다.
현 정권은 아직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집권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그란데아누 총리는 “우리를 뽑아준 시민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라며 시위대의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시위는 지난달 31일 정부가 부패사범을 대거 사면하는 긴급 행정명령을 발동하면서 시작됐다. 5년 이하의 형을 받고 수감된 죄수와 직권남용으로 20만레이(약 5,500만원) 미만의 국고 손실을 끼친 부패사범을 모두 사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교도소 과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명분이었지만, 시위대는 사회민주당(PSD) 당수인 리비우 드라그네아를 비롯해 정권 실세들을 봐주기 위한 꼼수로 여겼다. 드라그네아는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반정부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루마니아 정부는 4일 백기를 들어 부패사범 사면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전히 깊은 상황이다.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 정권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니엘이라고 이름을 밝힌 30대 남성은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부패사범 사면 조치 철회가 실제 시행되는지 지켜볼 것이다”라며 “우리의 미래가 도둑맞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부패정당 꼬리표가 붙은 집권당 PSD는 지난해 말 재집권에 성공했다. 2015년 빅토르 폰타 당시 총리가 탈세 등의 혐의로 루마니아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기소된 데 이어 클럽 화재 참사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그해 11월 내각 총사퇴를 선언하며 권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PSD당은 이후 1년 만에 총선에서 승리하며 지난해 12월 그란데아누 총리를 필두로한 정부를 다시 출범시킬 수 있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