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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라 '몰바니아'를 찾아서

입력
2017.02.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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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는 책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타이틀에 마음이 끌렸다. ‘일 년에 한 번은 전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떠나라’라니, 마음은 이미‘그럴게!’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인생이 무료해서, 안쓰러워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택한 게 여행이란 치료제였다. 세상에서 장렬히 숨고 싶던 당시가 아닌가. ‘거기가 어딘데?’ 혹은 ‘왜 거길 가는데?’란 의문이 피는 곳일수록 좋았다. 미지의 곳에 날 버려둘 것, ‘동유럽의 숨겨진 보석’이라는 몰바니아는 최상의 적임지였다. 그나저나 처음 들어본 나라라니, 역시 세계는 참 넓었다.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 등 동유럽식 풍류의 요충지, 베오그라드의 스카다르스카 거리.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 등 동유럽식 풍류의 요충지, 베오그라드의 스카다르스카 거리.

책을 넘기면서 슬슬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명색이 가이드북이라면 그 나라로 가고 싶은 의지를 키우는 정보의 요체다. 그런데 내용은 ‘이래도 이 나라로 진짜 갈 거야?’라는 반의법으로 맞섰다.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상실했다느니, 각종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느니, ‘불명확’과 ‘부정’의 사실을 너무 진중하게 서술해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인지 헛웃음부터 나왔다. 포털 사이트에 몰바니아를 검색해봤다. 어라? 이 나라 없다. 표지의 ‘지도에 없는 나라로 떠나는 여행 안내서’란 타이틀이 진짜였다.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란 책은 가상 나라인 몰바니아를 가이드북 형태로 만든 가짜 나라 안내서다. 아, 세계보다 나의 무지가 한참 넓었다.

일종의 배신감이 불러온 반사 효과는 어떻게든 몰바니아급(?) 동유럽에 가겠다는 의지를 솟구치게 했다. 잘 알려진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은 제외다. 대신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이자 동유럽 3국이 지도 위에서 볼륨감을 드러냈다. 드라큘라와 체조선수, 미녀 군단들…. 여행엔 큰 보탬이 안 되는 지식과 함께 항공권 결재는 완료되었다.

상흔의 세레나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체 파리(Paris)가 어딨는데?” 투덜댔다. 김일성과 절친이었던 막장 지도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지휘 아래 파리의 복제 도시가 되고자 한 아픈 수도다. 그래피티를 따라 도시의 삭막함이 흐르는 가운데, 파리의 로맨티시즘은 립스카니 거리(Str.Lipscani)와 가브로베니 거리(Str.Gabroveni)로 연결되는 역사 지구(Historic quarter)에서나 기를 편다. 피부가 벗겨진 건물 아래 테라스 우산이 활짝 펼쳐지고, 제법 알록달록한 거리 곳곳에서 악사의 선율로 심장이 부어 오른다. 최근 부패사범 사면 철회를 요구하는 민심이 폭발했던 대학광장(Plata Universitatii)이 이곳에 있다.

립스카니 거리의 세레나데. 중세 건물을 타고 울리는 선율을 경청하기 위해 짐을 바닥에 패대기 치고 땅에 주저앉았다. 오~ 솔레미오.
립스카니 거리의 세레나데. 중세 건물을 타고 울리는 선율을 경청하기 위해 짐을 바닥에 패대기 치고 땅에 주저앉았다. 오~ 솔레미오.
최근 부패 정치인을 사면하려는 정부의 꼼수에 항거하며 평화 시위대 융단이 깔렸던 대학광장 역 부근.
최근 부패 정치인을 사면하려는 정부의 꼼수에 항거하며 평화 시위대 융단이 깔렸던 대학광장 역 부근.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스위스-루마니아 은행이 고풍스러운 카페로 바뀐 역사 지구 내 좋은 예, 반 고흐(Van gogh)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스위스-루마니아 은행이 고풍스러운 카페로 바뀐 역사 지구 내 좋은 예, 반 고흐(Van gogh)

달콤한 꿈이어라, 루마니아 시기쇼아라(Sighisoara)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런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언덕 위의 깜찍한 요새다. 12세기 헝가리의 지배 하에 있던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시비우(Sibiu)와 브라쇼브(Brasov)와 더불어 ‘색슨족 트라이앵글(색슨족 장인과 상인이 거느리던 삼각 구도)’에 속하는 이곳. 13세기로 역주행하는 시계탑(Turnul cu Ceas) 전망대에 서면, 마을을 수호하는 14세기 성벽에 내려앉은 청량한 색깔의 집들이 낭만의 끝장을 보여준다. 싱그럽고 풍성한 나무숲과 트르나바 강(Târnava mare)의 물줄기, 뾰족한 세모꼴 지붕의 건축물이 누가 더 잘났는지 다투는데, 이곳에선 모두 승리자다. 다만, 오늘날 드라큘라란 별칭의 전신인, 공포 정치의 수장 블라드 체페슈가 이런 달콤한 마을 출신이란 게 영 농담 같다.

언제 꺼내 보아도 흐뭇해지는, 일상과 색의 야릇한 조화가 시기쇼아라에 있다.
언제 꺼내 보아도 흐뭇해지는, 일상과 색의 야릇한 조화가 시기쇼아라에 있다.
시기쇼아라의 역사지구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시계탑. 언덕 위로 오르는 고통이 곧 기쁨이다.
시기쇼아라의 역사지구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시계탑. 언덕 위로 오르는 고통이 곧 기쁨이다.
세타티 광장(Plata Cetatii) 주변으로 뻗은 골목을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릴 것. 색이 기뻐서 소리친다.
세타티 광장(Plata Cetatii) 주변으로 뻗은 골목을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릴 것. 색이 기뻐서 소리친다.

젊음의 행진, 루마니아 브라쇼브(Brasov)와 시나이아(Sinaia)

학교가 집결된 도시답게 그 동안 땅으로 꺼졌다고 의심했던 루마니아의 미남, 미녀가 물밀 듯이 바람을 일으켰다. 부쿠레슈티와 시기쇼아라의 교집합적인 도시랄까. 부쿠레슈티의 도시적인 편의와 시기쇼아라의 순박한 지방색이 섞인 탱글탱글한 여행지다. 탐파산(Mount Tampa)의 녹색 지붕 아래 브라쇼브의 동맥을 이루는 리퍼블리시 거리(Str Republicii)로부터 보헤미안풍 스파툴루이 광장(Piata Sfatului)에 이르기까지 오늘을 즐기려는 젊은 호흡으로 들썩인다. 유럽 각지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한 루마니아 국보 1호 펠레슈 성이 있는 시나이아(Sinaia)로의 당일치기 도피도 여기에서 가능하다.

늦은 오후면 깊고 진한 마지막 태양이 드리우는 스파툴루이 광장.
늦은 오후면 깊고 진한 마지막 태양이 드리우는 스파툴루이 광장.
탐파산에 아로새겨진, 여기는 할리우드가 아닌 브라쇼브.
탐파산에 아로새겨진, 여기는 할리우드가 아닌 브라쇼브.
깊은 숲길을 헤쳐 나가면 펠레슈 성이 심장마비 걸릴 듯 우뚝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숲길을 헤쳐 나가면 펠레슈 성이 심장마비 걸릴 듯 우뚝 모습을 드러낸다.

‘엣지’ 있는 발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

‘베오그라드는 하얀 도시란 뜻, 하지만 컬러풀한 수도다’란 문장에 몹시 끌렸다. 기차역 문을 지나자 어라? 코와 귀를 습격하는 매연과 소음, 그림 같은 세르비아어에 유괴당하는 줄 알았다. 이곳의 진미를 품은 크네즈 미하일로바(Knez Mihailova) 거리에 입성해서야 불쾌는 유쾌로 대치됐다. 2,300여년 간 부서지고 새로 짓기를 거듭했던 세르비아 부활처럼 카페와 패션숍, 기념품숍, 거리공연이 현대적 ‘엣지’를 뽐낸다. 길 끝의 칼레메그단 시타델(Kalemegdan Citadel) 공원은 사바 강(Sava River)과 다뉴브 강(Danube River)을 끼는 눈부신 산책을 허락하고, 레스토랑이 집결한 스카다르스카(Skadarska) 거리는 맥주 한 잔을 두고 로컬 밴드의 바이올린 연주에 넋을 놓게 한다. 결국, 돌아갈 기차를 놓칠세라 눈썹을 휘날리며 뛰어야 했다.

115회 전투를 치른 성채와 공원의 접합점인 칼레메그단 시타델은 선남선녀가 휴식하는 요새로 또 하나의 신세계를 만드는 중.
115회 전투를 치른 성채와 공원의 접합점인 칼레메그단 시타델은 선남선녀가 휴식하는 요새로 또 하나의 신세계를 만드는 중.
시시각각 약동하는 크네즈 미하일로바의 생명력은 거리의 아티스트 덕이다.
시시각각 약동하는 크네즈 미하일로바의 생명력은 거리의 아티스트 덕이다.

감성 폭발, 불가리아 벨리코 타르노보(Veliko Tarnovo)

뭔가를 기록하라고 얼마나 등을 떠밀렸는지 모른다. 매끈한 얀타강의 절벽 위로 아슬아슬하게 걸린 집들의 행진곡이라니.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방어기지인 차레베츠 요새(Tsarevets Fortress)가 머리띠처럼 둘러져 있고, 공평한 조망권을 얻은 계단식 건축물이 거짓말 같다. 이 깡촌이 발칸반도를 호령했던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다는 옛 영화는 더 거짓말 같았다. 그림 같은 풍경의 감성은 공방 겸 기념품 가게가 속을 채운 사모보드스카 차르쉬아(Samovodska Charshia) 지대로도 이어진다. 이콘화(종교나 신화적 색채를 띤 작품)와 목공, 도자기 등의 작업을 훔쳐보느라 얼마나 까치발을 들었던가. 어둠이 와도 마음을 놓아줄 리 없다. 울긋불긋 조명을 입는 차레베츠 요새의 나이트 쇼로 두근두근, 쿵쾅쿵쾅!

바람까지 직접 맞으면, 마을을 표현한 사진과 글이 얼마나 무력했던가를 알게 된다.
바람까지 직접 맞으면, 마을을 표현한 사진과 글이 얼마나 무력했던가를 알게 된다.
사모보드스카 차르쉬아 내 공방에 들어서면, 뭔가를 꼭 사야 한다는 지름신이 강림한다. 오, 주여.
사모보드스카 차르쉬아 내 공방에 들어서면, 뭔가를 꼭 사야 한다는 지름신이 강림한다. 오, 주여.
2017년 공식적인 쇼 계획은 여기에서(http://soundandlight.bg/en/shows/Upcoming-events.html). 단체 관광객이 유료로 요청할 수 있는 비공식 쇼도 진행 중.
2017년 공식적인 쇼 계획은 여기에서(http://soundandlight.bg/en/shows/Upcoming-events.html). 단체 관광객이 유료로 요청할 수 있는 비공식 쇼도 진행 중.

http://soundandlight.bg/en/shows/Upcoming-events.html

정교회의 하이킥! 불가리아 소피아(Sofia)

“서쪽에서 동쪽으로 30분만 걸으면 돼.” 서쪽 마케도니아 광장(pl Makedonia)에 인접한 호스텔의 시내 안내는 단출했다. 목적지를 동쪽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 정교회(Alexander Nevski Catedral)로 두고 직진하면 그렇다. 불가리아와 터키 상인이 반반인 혈기왕성한 북쪽 레이디스 마켓을 제한다면, 중앙의 스베타 네달리아 광장(pl Sveta Nedelya)에서 남쪽으로 뻗은 비토샤(Vitosha), 그라프 이그나티에브(Graf Ignatiev), 차르 오스보보디텔(Tsar Osvoboditel) 등 3대 거리의 맥만 잡고 돌면 복잡한 수도 구경이 크게 고되지만은 않다. 단, 동유럽의 단물을 이미 맛본 터라 불가리아만의 매력이 시들했는데,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정교회가 한 방을 날렸다. 53m의 황금 종탑과 12개의 종, 1만명을 수용하는 크기. 주변엔 시장과 교통이 북새통을 이루나 교회 앞만큼은 태풍의 눈, 적막함이 주는 전율 그 자체다.

소피아 여행은 도보로도 족하지만, 구식 트램 속에 덜컹거리는 현지인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소피아 여행은 도보로도 족하지만, 구식 트램 속에 덜컹거리는 현지인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소피아에서 가장 시끄럽고 유쾌하고 맛있는 레이디스 마켓. 해지면 마감하는 터라 체리 떨이 중.
소피아에서 가장 시끄럽고 유쾌하고 맛있는 레이디스 마켓. 해지면 마감하는 터라 체리 떨이 중.
석양이 깃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몇 번을 돌고 또 돌았다.
석양이 깃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 몇 번을 돌고 또 돌았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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