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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트럼프의 ‘충격과 공포’에 대비할 때

입력
2017.02.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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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한 친트럼프 시위자가 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반이민행정명령에 찬성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4일 한 친트럼프 시위자가 미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반이민행정명령에 찬성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보름 여 동안 보여준 행보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괴팍했다. 취임 하루 만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8년 여 동안 공들였던 오바마케어를 부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일주일 만에 건국 이후 미국의 근간을 이뤄온 이민자 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 이민 행정명령을 실행하는 등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다른 정부라면 수년이 걸릴 일들은 외교 및 통상분야에서도 전광석화처럼 벌어졌다. 미국이 더 큰 이익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 재협상을 선언하고, 곧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발표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환율조작국 족쇄를 언제라도 채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그야말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않은 공세적 행보에 여념이 없다. 어느 곳에 쉼표를 찍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세계는 격변을 경험했다. 덕분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안 전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후 첫 2주간 피소(被訴)건수(5건)의 10배 이상인 55건의 송사에 말려들었고, 트위터에서 ‘트럼프 암살’이 언급된 건수도 1만2,000여 회에 달했다.

이 지점에서 드는 궁금증은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제대로 각료 인준절차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토록 많은 ‘전투’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지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닐 고서치 대법관 지명 행사를 쇼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처럼 구성하는 등 독보적인 재능이라고는 고작 예능감각 정도에 불과해 보였던 트럼프. 비록 그의 비평가들은 후보자 시절부터 익히 감지됐던 괴이한 통치 스타일이 결국 실현된 것일 뿐이라고 일축하지만 어느새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내 대규모 고용 및 투자 약속을 받아내고 중동 국가들에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수법을 적용해 곳곳에서 외교적 실익을 얻어내고 있다. 방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트럼프 스타일의 정치가 그의 바람 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눈에 띄는 성과를 냈음은 뚜렷하다.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9%가 7개 이슬람국 출신의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찬성을 표시했을 만큼 최소한 그를 선택했던 유권자들을 만족시키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진면목을 숨긴 채 고도의 계산으로 상대 주머니에서 교묘히 원하는 것을 꺼내 갈 수 있는 장사꾼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발휘하는 효율적인 정치술의 근원을 거래의 기술에서 찾는 게 올바를 것이다. 스스로 “거래 자체를 위해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예술이다”고 말할 정도로 거래에 타고난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다니엘 헤닝어 부국장은 최근 칼럼에서 “트럼프는 상대를 신속히 공격해 응전할 의지를 순식간에 상실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재주를 갖고 있다”라며 그의 탁월한 정치적 거래 능력을 2003년 조지 W.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 당시 선보였던 ‘충격과 공포’작전에 빗댔다. 취임 첫날부터 정적과 주변국들에 보호무역과 반이민정책의 소나기 공격을 퍼부어 ‘충격’을 받게 한 후 이들이 ‘공포’에 질려 반격할 시간과 겨를을 갖지 못하게 해 이후 최소한의 대가만을 내놔도 만족하게 만드는 식이다.

아직 한국을 겨냥해 트럼프가 진짜 실력을 발휘하진 않고 있지만 머지않아 한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환율조작국 지정, 방위비분담금 증대 등 ‘충격’을 한꺼번에 내던지며 통상ㆍ경제 이익을 챙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합의로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했지만, 곧 이를 레버리지로 이용해 한중 관계의 리셋을 요구하고 나설 수 있다. 짧은 시간 지구촌을 충격으로 몰아넣고 ‘겨울 백악관’ 마라라고 리조트로 휴가를 떠난 트럼프가 전열을 정비해 워싱턴으로 돌아올 때 한반도와 세계는 훨씬 강력한 그의 ‘충격’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에겐 ‘공포’에 맞서 준비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양홍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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