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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현실 앞에 바뀌는 여자의 삶... 그 목메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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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현실 앞에 바뀌는 여자의 삶... 그 목메는 체험

입력
2017.02.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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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을 선택한

한 여성의

가상적 두 삶을

담담히 따라가

결혼에 대한 이미지를 검색하면, 대개 이렇다. 결혼은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게 어떤 삶일지, '나의 진짜 아이들'은 그 세계로 안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결혼에 대한 이미지를 검색하면, 대개 이렇다. 결혼은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그게 어떤 삶일지, '나의 진짜 아이들'은 그 세계로 안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스물다섯 살 때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을 결심했다”는 말은 로맨틱하다. 현실은 로맨틱이라는 말보다 훨씬 복잡했다. 파트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서로 사랑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일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수많은 관계와 의무가 생겨났다. 두 배로 늘어난 인척과 경조사에 허덕였고, 명절 전에는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았다. 30년을 부모 품에서 자란 남편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사노동은 평등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상실은 일에서 왔다. 나는 결혼 전에 장편소설을 쓰기로 계약하고 삼분의 일까지 써두었었다. 그 소설은 결혼이라는 큰 변화와 동시에 영영 사라졌고,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남편이 잠든 밤, 빈 모니터 앞에서 증발한 글의 파편을 부여잡고 새벽까지 울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울 만큼 편해지기도 했다. 무엇 하러 일찍 결혼했냐는 타박보다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느냐는 말이 훨씬 보편적인 한국사회에서, 나는 하루 아침에 잠재적 ‘정상’이자 다수가 되었다. 크게는 누구도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작게는 재미없고 어려운 술자리에서 나가겠다는 말을 언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집에서 남편이 기다려서요.” 이 말이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편견에 굴복하고 편견을 강화한다는 죄책감과 그 편견에 기대 얻은 일상의 소소한 편안함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러운 상실과 그때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감정의 풍요로움 사이에서 헤맸다.

나는 결혼이 삶을 바꾸리라고는 막연히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조 월튼의 ‘나의 진짜 아이들’은 바로 이 결혼이라는 분기점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주인공 패트리샤의 일생을 다룬 작품이다. 1949년 옥스포드대학을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일하던 패트리샤는 원거리 연애를 하던 약혼자 마크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지금 당장 나랑 결혼해. 아니면 영영 못 해!”

한 세계의 패트리샤(트리샤)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에 결혼을 결심한다. 트리샤는 학기 중에 학교를 그만두고 허겁지겁 약혼자의 곁으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린다. 어설프고 불쾌한 초야를 치르고 바로 임신을 한다. 다른 세계의 패트리샤(팻)는 약혼자의 다급한 청혼을 거절하고 이별의 슬픔에 상심하다가, 마침 함께 여행을 하자는 대학 동창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럽 여행을 떠난다.

트리샤는 유산과 출산을 반복하며 가정주부로 결혼생활을 이어나간다. 교수의 꿈이 좌절된 남편은 같은 옥스포드를 나온 트리샤를 무시하고, 트리샤는 저 아이를 돌보고 이 부엌을 청소하고 밤에는 남편의 원고를 타이핑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팻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떠난 유럽 여행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에 푹 빠지고, 자신처럼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피렌체를 방문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행안내서를 써 작가로 등단한다. 그리고 평생의 파트너가 될 비를 만난다.

이렇게만 말하면 결혼한 트리샤는 힘들고 불행하게 살았고 결혼하지 않은 팻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삶이 그렇게 단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는 결혼이 한 인간, 특히 ‘여성’의 삶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현실을 담담히 풀어나간다.

애당초 패트리샤가 남자였다면 패트리샤의 삶은 결혼으로 그토록 많이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패트리샤에게 결혼이란 교직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남편의 직장 사정에 맞춰 이사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주는 돈으로 살림을 꾸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으로 임신과 출산과 유산을 하는 것이었다. 옥스포드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자신의 지적 욕망을 꺾고 줄여나가는 것이었다.

패트리샤는 결혼이 이 모든 포기를 감당해야 하는 선택임을 몰랐다. 그러나 알았다고 달리 선택했을까? 1940년대의 여성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시대, 이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이제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착시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조 월튼은 담담히 두 패트리샤의 삶을 따라간다. 어떤 선택을 폄훼하거나 칭찬하지 않고 다만 독자에게 보여준다. 한 여자의 선택, 본능, 포기, 욕망, 그 모든 것을 덮고 이어지는 삶과 당연히 닥치는 죽음까지. 그 긴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대신 살아보는 것은 독자이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고, 패트리샤와 나란히 서서 여자로서의 내 삶, 내 선택을 돌아보고 패트리샤 나이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은 여성 독자이기에 할 수 있는 더욱 특별한 경험이다. ‘나의 진짜 아이들’은 숨이 막히기보다는 목이 메는 것 같은 감동이 있는 책이다.

정소연 SF작가ㆍ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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