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서부간선ㆍ제물포터널에
車 배기가스 환기구 만들면서
인근 주민에 사업정보 제공 안 해
프랑스는 지하도로 만들며
주민 설득에만 30년 공들여
비상대책위 “사업 중단” 주장
“서울시가 모범사례로 내세우고 있는 프랑스 파리는 지하도로를 만들면서 주민 설득에만 30년을 공들였다는데 서울시는 일단 뚫고 보겠다는 식이네요. 서울시는 시민 목소리를 듣고는 있는 건가요?”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2004년부터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36)씨는 지난해 11월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던 공사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부터 불과 각각 200m, 400m 떨어진 곳에서 지하화되는 서울제물포터널과 서부간선도로의 환기구를 뚫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처음에는 축구장 같은 주민편의시설 공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이웃에 물어봐도 무슨 공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며 “주택가 인근에 ‘매연 굴뚝’을 만들면서 주민들에게 협의는커녕 설명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습 교통체증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가 2020년과 2021년 개통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제물포터널과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이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뿜어 내는 환기구가 주택가, 학교 등과 가깝다 보니 주민들이 건강 문제를 들고 일어섰던 것. 이에 시는 환기구 설치를 백지화하는 대신 지상으로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터널 내부에서 정화하는 바이패스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주민들은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협의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시는 “(파리처럼)30년 협의하면 정체 문제는 언제 해소하느냐”며 공사는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주민들의 님비현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시의 불통 행정을 문제로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한 도시 계획 전문가는 “애초 시가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일방통행식 행정을 펼치면서 예견된 결과였다”며 “일본은 주민과 협의하는 기간만 5~10년을 가질 정도로 철저하게 주민 참여 방식의 도시행정을 펼치는데 우리는 절차를 생략하고 급하게 진행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인근 거주 주민에게는 건강권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지만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은 이제서야 논의에 들어갔다.
아직은 국내에서 낯선 지하도로 자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도 부족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이패스 방식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만큼 기술적 한계는 없는지, 비용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 내부 공기를 반복해서 돌리는 게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은지 등을 사전에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하도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배기가스 문제뿐 아니라 그로 인한 터널 내 운전자들의 건강 문제도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부간선도로의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보면 대기오염물질로 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만을 분석했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부소장은 “실제 제한된 터널 내에서는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문제가 더 심각한데 아무런 논의가 되지 않은 것만 봐도 이 사업이 충분한 검토가 안 됐다는 방증”이라며 “처음 시도하는 공사를 하면서 법적인 환경 기준만 고집했다가는 틀림없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확한 예산 추산과 재원 검토 없이 바이패스 방식 도입만 덜컥 약속해 놓고 나중에 그 비용은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에게 통행료 부담으로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우 양평동 환기구 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의 요구를 님비로 몰고 있지만 우리는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제 막 주민협의체가 구성되려는 단계이니만큼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함께 협의하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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