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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했던 반기문 “에비앙 생수? 대통령 되는데 중요한가?”

입력
2017.02.0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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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ㆍ언론에 불만 토로

“동생 비리 혐의엔 도의적 책임”

반기문(왼쪽)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의당을 방문해 심상정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반기문(왼쪽)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의당을 방문해 심상정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파트는 필요한 가구만 갖춘 단출한 집이었다. 거실에도 벽걸이형 TV와 소파, 작은 테이블이 전부고, 바닥엔 카페트뿐이었다. 흔한 장식장 하나 없었다. 시장에 갈 때도 양복만 고집했던 반 전 총장이 반팔 면티와 고무줄 바지를 입은 채 인터뷰에 응했다. “들어오세요.” 그는 엷은 미소를 띠며 기자를 맞이했다. 이내 그는 작심한 듯 “정치인들이 다 자기 계산 있더라”며 강한 어조로 한국 정치권을 비난했다. 1일 오후 3시 30분 불출마 선언으로 대선판에 폭탄을 던진 지 7시간 만에 자택에서 이뤄진 심야 단독 인터뷰에서였다.

반 전 총장은 할 말이 많다는 듯 던지는 질문마다 바로 답을 했다. 어느 신문에선 ‘사퇴 선언문을 품고서 3당을 돌았다’고 썼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새벽에 손으로 쓴 선언문을 김숙 전 유엔 대사에게 타자를 쳐달라며 넘겼고, 오후 3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만나기 10분 전에 받았다”고 했다. 그 즈음 이도운 대변인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알렸다고 한다.

귀국 후 21일간 경험한 현실정치에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든 것 같았다. “정치가 한국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고 영향도 어마어마하게 크더라” “말로만 대의라고 하지 자신을 희생할 준비는 안 돼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솔직히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데 무슨 에비앙(프랑스 생수)을 잡았느니, 전철을 (티켓 발권 미숙으로) 잘못 탔느니, 이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데도 신문 1면에 나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동생 반기상씨 부자가 연루된 비리 혐의에 대해선 “혐의가 있다니 내가 할 말이 없다”며 “사실 내게도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선거를 치르려면 모든 걸 다 드러내야 하는 한국 정치의 토양에 발을 내디딜 준비가 안 된 듯 보였다. 한편으론 대선 출마의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도 느껴졌다. 가족들도 잘한 결정이라고 힘을 실어줬고, 자신의 후임인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이 전화를 걸어와 격려한 사실도 공개했다.

반 전 총장은 2일 오전 자택을 나서며 기자들과 만나 “3주간 정치인을 만나보니까 그분들 생각이 모두 다르고 한 군데 끌어 모아서 대통합을 이루는 게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포에 마련된 선거캠프로 가서 사무실을 정리하고 해단식을 겸한 마지막 오찬 자리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한국 정치사회에서는 ‘정치는 이런 것이다. 정치는 꾼이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치를 특정한 배타적 지역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들끼리 한다”면서 “이런 건 정치가 아니다”라고 정치권을 거듭 비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o.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고 있다.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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